항목 ID | GC05101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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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碩玄 |
이칭/별칭 | 지원(志遠),오회당(五懷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56년 6월 18일 - 정석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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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30년 11월 24일 - 정석현 사망 |
묘소|단소 | 정석현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저술 | 『오회당일고(五懷堂逸稿)』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정석현(鄭碩玄)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지원(志遠), 호는 오회당(五懷堂)이다. 고조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며,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정수번(鄭守藩), 조부는 정호신(鄭好臣)이다. 부친은 부사과(副司果) 정시우(鄭時羽)이며, 모친은 숙인(淑人)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구인계(具仁繼)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손씨(密陽孫氏)이며,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아우 정석승(鄭碩升)의 아들 정중주(鄭重周)로 뒤를 이었다.
[활동 사항]
정석현은 1656년(효종 7) 6월 18일에 태어나 1730년(영조 6) 11월 24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셨으며, 당시 지역의 큰 선비인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이형상(李衡祥)·정중기(鄭重器)·정간(鄭榦)·정제(鄭悌)·조선장(曺善長) 등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만년에 사당 문 밖에 따로 집 한 채를 지어 ‘오회당(五懷堂)’이라 이름하고 다섯 형제들과 모여 지냈다.
[학문과 저술]
석판본인 2권 1책의 『오회당일고(五懷堂逸稿)』가 있다.
[묘소]
정석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성곡리(聖谷里) 하천(夏泉)에 있으며, 진산(晉山) 하겸진(河謙鎭)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