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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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傀市里-宅 |
영어공식명칭 | Cheonjeondaek in Yeongdeok |
이칭/별칭 | 내앞댁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7[괴시리 3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남유용이 건립한 고택.
[개설]
영덕 괴시리 내앞댁(盈德傀市里-宅)은 남유용(南有鏞)[1842~1899]이 괴시리 호지마을에 건립한 살림집이다. 괴시리 호지마을은 고려 후기 함창김씨를 시작으로 조선 명종 때 수안김씨, 영해신씨를 비롯해 인조 때 영양남씨가 이거한 영덕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이후 다른 성씨는 이주하고 영양남씨만 세거하고 있다.
[위치]
영해면 내에서 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호지마을 남쪽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7[괴시리 318]에 있다. 마을 앞으로는 송천이 동해로 흐르고 있으며, 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동쪽의 망일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마을을 '入' 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 지형에 맞추어 대부분의 가옥이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호지마을은 영양남씨 집성촌으로 주곡댁, 괴시리 물소와고택 등 조선시대에 건립한 고택·종택·누정 등의 문화유산이 산재한다.
[변천]
영덕 괴시리 내앞댁은 남유용이 1876년(고종 13)에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보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영덕 괴시리 내앞댁을 ‘내앞댁’으로 부르는데, 남유용의 처향(妻鄕)이 안동 내앞마을이므로 택호를 내앞, 즉 천전으로 사용하였다.
[형태]
마을길에 면해 남동향하는 평대문을 들어서면 제법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그 너머에 남서향으로 좌향하는 정침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에 안채, 사랑채, 중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면 구성은 '⊓' 자형 안채, '⊥' 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완전하게 연결된 완결형에 사랑마루와 중문간 우측으로 방을 각기 돌출시켜 전체적으로는 행간확장형 뜰집에 속한다. 평면은 안채가 2칸 규모의 안마당에 면해 겹집형의 안대청을 두고 그 좌측으로 상부다락이 있는 상방과 통래칸 마루, 우측으로 안방과 도장이 겹으로 배열해 있다. 안방 앞으로는 상부다락이 있는 정지가 우익사, 상방 앞으로는 마룻바닥의 곳간 2칸에 반칸 규모의 통래칸을 두어 좌익사를 구성하였다. 안마당 한쪽에 비켜 설치한 중문간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광 1칸에 방 2칸의 작은사랑이 돌출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는 사랑방 2칸통에 사랑마루 1칸을 일렬로 배열하고 그 앞으로는 툇마루를 전체적으로 설치하였다. 사랑방 뒤로는 감실 반칸을 두었고, 사랑마루 전면에는 분합문을 달아 내부화하였다. 안채 상방과 그 앞 통래칸 문 밖과 사랑마루 뒤편의 감실 문 밖에도 쪽마루를 두어 외부간 통행 시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구조는 정침 전면의 사랑채는 중문간보다 앞으로 1칸 돌출해 기단과 툇마루를 높게 설치하고, 팔작지붕으로 꾸며 권위와 격식을 차렸다. 사랑채는 네모기둥 위에 민도리 형식으로 꾸민 3량가 팔작기와집이다. 안채 안대청은 네모기둥에 안대청 전면의 고주상에는 직절익공 형식, 그 외는 민도리 형식에 2고주 5량가이다. 안대청, 정지, 고방 등은 판벽에 널문을 달았고, 안방을 비롯한 방에는 한식토벽에 살창과 살문을 달아 각 실의 기능과 용도에 따라 건축부재와 마감처리를 달리 하였다.
[현황]
199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말에 분가한 살림집이다. 근년에 전통한옥 민박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내부 공간은 디소 변형되었으나 전체적인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경상북도 북부 및 영덕 지역 특유의 평면 및 공간구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