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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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鼎九 |
영어공식명칭 | Kim Jeonggu |
이칭/별칭 | 현보(鉉甫),수암(茱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김정구(金鼎九)[1680~1724]는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했으며, 남학훈도(南學訓導) 등을 지냈다.
[가계]
김정구의 본관은 수안(遂安), 자는 현보(鉉甫), 호는 수암(茱庵)이다. 전리판서(典利判書)를 역임한 김위(金渭)의 후손이다. 조선 초기 영일현감을 지낸 김성정(金成鼎)과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웠던 무과 출신의 선무원종공신 김난서(金鸞瑞)가 그의 현조(顯祖)가 된다. 고조할아버지는 김난서의 아들이자 군자감 주부였던 김흔(金昕)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천승(金泉丞)을 역임한 김광국(金光國)이다.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김도장(金道章)이며, 아버지는 매창(梅牕) 김세희(金世煕)로 학문과 행의(行誼)가 있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부호군 장종한(張宗翰)의 딸 선사장씨(仙槎張氏)[울진장씨]이다. 부인은 권순기(權舜基)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김정구는 1713년(숙종 39) 생원·진사 양과에 모두 입격하였다. 1723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남학훈도를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문장이 호한(浩汗)하여, 형 김하구(金夏九)[1676~1762)와 함께 소식(蘇軾)[소동파(蘇東坡), 1037~1101]과 소철(蘇轍)[1039~1112] 형제라는 칭송이 있었다. 문집인 「정자공유고(正字公遺稿)」 는 김하구의 『추암집(楸菴集)』에 부집(附集)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