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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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宅烈 |
영어공식명칭 | Oh Taegyeol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출생 시기/일시 | 1903년 - 오택열 영덕군 영덕면에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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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오택열 제헌의회 의원 당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8월 28일 - 오택열 납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10월 15일 - 오택열 납북 피해자 인정 |
출생지 | 오택열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
성격 | 정치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헌국회 의원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정치인.
[개설]
오택열(吳宅烈)[1903~?]은 영덕군 출신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제헌의회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가계]
오택열은 1903년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오택열은 영덕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덕면 서기를 지낸 후 한때 광산을 경영하였고, 영덕주조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에는 1946년 2월 결성된 우익 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영덕군 지부 총무부장, 영덕군 지부 지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영덕군 양곡배급조합장, 영덕군 후생회 부회장, 대동청년단 영덕군 후원회 회장도 지냈다.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영덕군 선거구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해 무투표 당선되었으나,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였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28일 경기도 개성시 인근에서 북한군에 체포되어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2012년 10월 15일 6.25전쟁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 결정에 따라 6.25전쟁 납북피해자로 인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호호대 솔동산에 영덕 출신 국회의원 4인[오택렬·한국원·김원규·김영수]의 행적을 기리는 공덕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