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시리 호지마을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182
한자 槐市里濠池-洞祭
영어공식명칭 Village Ritual in Goesi-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큰 동신제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1리 호지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작은 동신제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1리 호지마을지도보기
성격 의례|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저녁
신당/신체 큰 동신/장승과 당목|작은 동신/팽나무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1리 호지마을에서 매년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영덕군의 영해면, 창수면, 축산면, 병곡면 지역을 원영해(元寧海) 지역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원영해 지역에는 동해안 지역에서 드물게 여러 곳에 반촌(班村)이 형성되었다. 여러 반촌 중에서 괴시1리 호지(濠池)마을은 조선 후기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중의 하나로 성장한 영양남씨의 집성촌이다. 예로부터 호지마을에서는 두 곳의 제당(祭堂)에서 동제(洞祭)를 지내왔다. 각기 큰 동신제와 작은 동신제로 구분되어 지냈던 호지마을의 동제는 이곳의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연원 및 변천]

괴시1리 호지마을은 고려 말부터 영해 토성인 함창김씨가 세거(世居)하였고, 이후 조선 명종(明宗)[재위 1545~1567] 때에 수안김씨와 영해신씨가 거주하였다. 17세기 중엽 영양남씨들이 혼인을 통해 호지마을에 입향(入鄕)한 이래 동족 기반을 확립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호지마을은 전면에 영해평야를 바라보는 서북향을 취하고 있으며, 마을 뒤 동쪽으로는 망월봉을 포함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호지마을에는 북쪽으로부터 호지골, 중마골, 스무나무골로 불리는 세 개의 골이 연이어 형성되어 있다. 이 중 중마골은 다시 북쪽으로부터 윗말, 아랫말, 중마골로 나누어지며, 주로 영양남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호지골과 스무나무골에는 타성(他姓)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영양남씨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호지마을의 큰 동신(洞神)은 중마골 입구에 있으며, 영양남씨들이 동제를 주재(主宰)해 왔으며, 작은 동신은 스무나무골 입구에 있으며, 주로 타성들이 동제를 주재해 왔다.

[신당/신체의 형태]

호지마을의 큰 동신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중마골의 입구에 있으며, 영해면 소재지에서 어촌인 대진리 방면으로 이어진 도로변에 있다.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稼亭牧隱兩先生遺虛碑)[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41]에 인접한 곳에 있는 큰 동신은 장승과 당목(堂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에 돌담을 둘렀다. 큰 동신의 장승은 원래 목제 장승이었으나 현재는 석제 장승으로 대체되었으며, ‘축귀장군남정중(逐鬼將軍南正重)’이 새겨져 있다. 호지마을의 장승은 조선 후기 영해 지역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고 괴질이 돌자 괴시리의 영양남씨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 앞에 액막이를 위해서 세웠다. 호지마을의 작은 동신은 마을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스무나무골에 있으며, 당목과 시멘트 제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동신은 마을 앞 도로변에 있는 큰 동신과는 달리 마을의 내부의 마을회관 부근에 있다. 신체(神體)인 팽구나무 주변에 역시 시멘트로 담을 둘러 구분하였다.

[절차]

큰 동신제는 호지마을의 영양남씨들을 중심으로 매년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지내왔다. 이보다 앞서 정월 초사흘에 제관(祭官)을 선정하는데, 이날 세 명의 헌관을 비롯해 축관, 진설, 봉향, 봉로 등 모두 일곱 명의 제관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제관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바깥출입을 금하는 등의 금기(禁忌)를 수행하였다. 정월 열사흘에 제당(祭堂) 주변, 제관 집과 제수(祭需)를 장만하는 도가 집 그리고 우물 주변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동제를 지내기 위하여 장만하는 제수로는 장닭 두 마리, 채반 두 그릇, 메 두 그릇, 가자미 두 마리, 백편, 밤, 대추, 곶감, 사과 등이 있다. 그런데 큰 동신의 제사에 사용하는 닭을 비롯한 육류와 가자미를 비롯한 생선은 모두 날것을 사용하였다. 제관은 한복을 입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설날 곱게 차려입은 한복을 동제를 지낼 때 다시 입었다. 제의(祭儀)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진설(陳設), 강신(降神),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첨작(添酌), 유식(侑食), 진다(進茶), 소지(燒紙)의 순으로 지내 왔다. 큰 동신에 대한 제의를 마친 다음에 도로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 영해들을 향하여 간단히 제수를 장만한 채 거리제를 지냈다.

호지마을의 작은 동신제는 큰 동신제에 하루 앞서 정월 14일 자정 무렵에 지내 왔다. 큰 동신제와 마찬가지로 정월 초사흗날 제관을 선정하며, 이후 동제에 따른 각종 금기(禁忌)를 수행하였다. 작은 동신제를 지내기 위한 제관은 세 명을 선정하였다. 큰 동신제보다 하루 빠른 정월 열이틀에 제당 주변과 제관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진행되어 큰 동신제와 유사하였으나, 진설(陳設)하는 제수는 큰 동신제와는 달리 날것이 아닌 익힌 것을 사용하였다.

[축문]

괴시리 호지마을의 동제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경자정월정묘삭십오일신사유학

감소고우

동주지신유동이래 위축영신 세세원망

근이차전호아 전동청정 전안소거

불상흥성 길운치차 양진신도

공신 복유 황신혁강 상향

維歲次 卿子正月丁卯朔十五日辛巳幼學

敢昭告于

洞主之神有洞以來 爲祝靈神 歲歲願望

謹以此奠護我 全洞淸靜 全安消去

不祥興盛 吉運値此 良辰神禱

恭伸 伏惟 隍神赫降 尙饗

[현황]

전통시대의 사회관계를 반영하여 지냈던 호지마을의 이원화된 동제는 최근 지역민 수의 감소와 고령화로 간소화되었다. 제일, 제관 선정 방식, 제수 장만 등에 있어 엄격히 구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정월대보름에 두 곳의 제당에서 함께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두 곳의 제당 모두에서 익힌 제수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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