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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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Tug of War Game |
이칭/별칭 | 삭전,조리지희,갈전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정의]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기며 노는 놀이.
[개설]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정월대보름날 많은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기며 승부를 겨루는 성인 남녀의 놀이이다.
[연원]
줄다리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당나라 시기 봉연(封演)이 쓴 『봉씨견문기(封氏聞見記)』에 춘추시대에 오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에서 유래하였다고 하였으나, 실재로는 풍년을 비는 농경 의식으로 그 이전부터 행하여졌으리라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처음으로 줄다리기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며, 그 연원은 훨씬 이전부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줄다리기를 위한 줄은 짚을 꼬아 만든다. 빠르면 한 달 전부터 마을에서 짚을 거두어 준비를 한다. 영덕 지역의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은 암줄과 수줄을 합쳐 100m 이상이 되는 것도 많았다고 한다.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인이 줄을 건너면 줄이 끊어진다 믿어 여인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였다. 암줄과 수줄은 마을 간의 합의에 따라 나눠 만든다. 영덕읍 창포리의 경우 칡을 이용해 줄을 만들기도 하였다. 1940년대 이후에는 마닐라 로프와 나일론 로프를 짚과 함께 사용하기도 하였다.
[놀이 방법]
줄다리기는 대부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진행하는데, 이는 농경 민족이 연초(年初)에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관습과 연관이 있다. 암줄과 수줄을 경쟁시켜 여성으로서 풍요다산의 의미가 있는 암줄이 이김으로써 풍년이 올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 마을이 두 패로 편을 짜는데, 행정구역상 1리와 2리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동서, 혹은 남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마을 이장이 대표가 되어 추진회 대표를 맡도록 하며, 대표는 이 행사의 운영을 책임지고 진행시킨다. 참가 인원 수는 제한하지 않고, 서로 자기네 편이 많이 모이도록 참여를 권유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협동심이 우러나 너 나 할 것 없이 참여한다.
줄을 만들기 위해 개개인이 짚단을 가지고 와 공동 작업을 한다. 줄을 다 만들면 두 줄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데, 1리와 2리가 협약에 의해 암줄과 수줄을 나누어 만든다. 두 줄을 연결시키기 위해 줄머리에 고리를 만든다. 이때 수줄을 암줄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크게 만드는 훼방을 놓기도 한다. 줄을 만들 때는 여인의 접근을 금지한다. 여인이 줄을 건너면 시합할 때 줄이 끊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줄다리기 시작은 징을 쳐서 알린다. 신호를 울리면 서로 힘을 주어 잡아당긴다. 대장은 줄 위에 올라타 지휘하며 지시에 따라 농악대가 응원하고 깃발을 휘두른다. 줄을 깔고 앉거나, 상대방의 허점을 잘 포착하는 등의 기술이 요구된다. 줄은 힘이 센 쪽이 이기기 때문에 만약 한쪽이 기우는 조짐이 보이면 처음에는 구경하던 노인과 부녀자들도 줄에 매달린다. 상대방의 허점이 보이면 갑자기 잡아당겨 승부를 내는 수도 있기 때문에 대장은 늘 상황을 조심스레 살피며 지시를 해야 한다.
중앙선에서 많이 끌려간 편이 진다. 이긴 편은 농악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춤을 추지만, 진 편에서는 기가 죽어 허탈하게 앉아 춤추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한 줄은 마을 입구 액막이돌이나 신목(神木)에 감아 두기도 하고, 썰어 둔 뒤 논에 거름으로 넣으면 풍년이 들고, 어부가 줄을 가지고 출어하면 만선(滿船)을 한다는 이야기 등이 있어 이긴 편의 줄을 얻어 가기도 한다. 이는 지역민들이 줄다리기를 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는 놀이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일 것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줄다리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풍년을 기원하고 운수를 점치는 공감주술(共感呪術)의 하나이자 농경의식(農耕儀式)으로서 연중행사처럼 행하여졌다.
달산면 주응리에서는 매일리와 흥기리는 아랫마을, 주응리와 옥산리는 윗마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미리 협약하여 암줄과 수줄을 만들며, 둘을 합치면 그 길이는 100m 이상이었다고 한다.
영해면 괴시리 호지마을에서는 마을회관에서 호지골로 잇는 길에서 좌우로 나뉘어 안마을과 바깥마을을 분담해 줄다리기를 진행하였다. 5일간 진행되었으며 형제 간이라도 편이 갈리면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과열되었다.
지품면 낙평리에서는 1930년부터 3년마다 한 번씩 정월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하였다. 30여 마지기 분량의 짚을 동원해 합 200m의 줄을 만들었다. 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마을의 위와 아래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공정한 승부를 위해 경찰을 심판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영덕읍 창포리에서는 풍어제의 일부로 3년마다 줄다리기를 하였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수줄[할배줄]과 암줄[할매줄]을 나누어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은 고냉이 방구[고양이 바위]라는 바위를 중심으로 늘어뜨려 줄다리기를 한다. 예전에는 줄다리기의 규모가 커 영덕군수는 물론 면장, 경찰들도 들렀다고 한다. 근래에는 줄을 당기는 장소가 모래사장이 아닌 도로로 바뀌었으며 로프[밧줄]를 대신 당긴다.
[현황]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전통적인 줄다리기 행사는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다만 지자체 등의 주관 아래 재현 행사 등을 열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54회까지 이어져 오는 영덕군민체육대회 등에서도 축구, 육상, 씨름과 함께 주요 종목으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어 관에서도 줄다리기를 군민 화합을 위한 주요한 행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