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80
한자 李庭堅
영어공식명칭 Lee Jeong-gyeon
이칭/별칭 직경(直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이정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이정견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4년 - 이정견 선무원종공신 2등 녹훈
몰년 시기/일시 1610년연표보기 - 이정견 사망
거주|이주지 이정견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무신
성별
본관 공주(公州)
대표 관직 기장현감|군자감정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무신.

[개설]

이정견(李庭堅)[1557~1610]은 무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및 관군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가계]

이정견의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직경(直卿)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이석간(李碩幹)[1502~1574], 어머니는 이린(李麟)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 할아버지는 생원 이함(李諴), 증조할아버지는 내금위 이종손(李從孫)이다. 부인은 참의를 지낸 김란(金鸞)의 딸 숙인 예안김씨(禮安金氏)와 참봉을 지낸 민몽양(閔蒙養)의 딸 숙인 영천민씨(榮川閔氏)이다.

[활동 사항]

이정견은 1591년(선조 24) 남쪽에서 변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동생 이정헌(李庭憲)[1559~1592]과 함께 문과 공부 대신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정발(鄭撥)[1553~1592] 휘하에 있던 이정헌은 부산진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정견은 이때 의병을 일으켜 용궁에서 적들을 물리쳤다. 이에 안집사 김륵(金玏)[1540~1616]이 조정에 천거하였고, 특별히 안동진병마절제사에 제수되었다. 이 무렵 일본군은 평양성과 행주산성에서 잇따라 패배를 당해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는데, 이정견이 군사를 이끌고 가서 원주에서 물리쳤다. 그 공으로 이정견은 강원도도사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기장현감과 군자감정 등에 제수되었다.

[상훈과 추모]

이정견은 1604년(선조 37)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