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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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鉉 |
영어공식명칭 | Hwang 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369년 - 황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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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89년 - 황현 생원시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93년 - 황현 춘장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07년 - 황현 성균관직강으로서 중시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07년 - 황현 경승부소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15년 - 황현 직예문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25년 - 황현 성균관대사성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428년 - 황현 인수부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30년 - 황현 성균관대사성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434년 - 황현 사망 |
출생지 | 삼판서 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
외가|처가 | 삼판서 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
묘소|단소 | 황현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문정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평해(平海) |
대표 관직 | 경승부소윤|성균관대사성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황현(黃鉉)[1369~1434]은 조선 태종 대에 출사하여 거듭 과거에 급제한 후 경승부소윤·성균관대사성 등을 지냈다.
[가계]
황현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가 영천(榮川)으로 이주한 이래 이 가문은 영천과 봉화 등지의 사족들과 혼인을 이어갔다. 황원로는 단양우씨(丹陽禹氏)와 혼인하였는데, 처숙부가 우탁(禹倬)[1262~1342]이다. 할아버지 황근(黃瑾)[1302~?]은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했으며, 할머니는 문정공 안축(安軸)[1282~1348] 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아버지 황유정(黃有定)[1343~?]은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어머니는 청백리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딸 봉화정씨(奉化鄭氏)로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누이이다. 황현의 부인은 정부인 전주최씨이며, 판서 최병례(崔丙禮)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황현은 1389년(창왕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393년(태조 2) 춘장시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1407년(태종 7) 성균관직강으로서 중시 문과에 급제하여, 원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경승부소윤에 임명되었다. 1415년(태종 15) 직예문관으로 있으면서 관리들의 설날 귀향과 성묘하는 제도를 정하도록 요청하여, 국왕의 윤허를 받았다.
황현은 1425년(세종 7) 성균관대사성으로 있으면서 유생들의 건강을 우려하여 숙소 개량과 학생 건강관리 방안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1428년(세종 10)에는 세자를 교육하는 인수부부윤이 되었으며, 1429년에는 성균관대사성을 겸직하였다. 1430년(세종 12) 당시 성균관의 학풍이 사장학을 중시하고 경학을 소홀히 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성균관 유생을 구재(九齋)로 나누어 사서오경을 가르치고, 문과 초시의 강경법을 다시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등 유생 교육과 훈도에 노력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동잡록』, 『동유사우록』에서는 황현을 경서에 밝고 행실이 닦여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묘소]
황현의 묘소는 영주시 문정동 서릿골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황현은 1407년 성균관직강으로서 중시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한 후 포상으로 전지 10결과 본향의 노비 1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