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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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有定 |
영어공식명칭 | Hwang Yu-jeong |
이칭/별칭 | 지정(知定),미균(米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343년 - 황유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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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90년 - 황유정 초계군수 재임 |
추모 시기/일시 | 1799년 - 황유정 묘소에 제단과 비 설치 |
추모 시기/일시 | 1967년 - 사모정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75년 - 황유정 신도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추원재 중건 |
출생지 | 황유정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외가|처가 | 황유정 처가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
묘소|단소 | 황유정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평해(平海) |
대표 관직 | 초계군수|예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황유정(黃有定)[1343~?]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환하였던 문신으로 초계군수·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가계]
황유정의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지정(黃之挺), 할아버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로 영천(榮川) 초곡[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예 겸 예문관직제학을 지낸 황근(黃瑾)[1302~?]이며, 어머니는 안축(安軸)[1282~1348]의 딸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황유정의 부인은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딸 봉화정씨(奉化鄭氏)로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처남이다. 황유정은 장인의 가장을 물려받아 영주 읍내로 옮겨 살았는데, 그 집이 현재의 삼판서 고택이다.
[활동 사항]
황유정은 1355년(공민왕 4) 12세의 나이로 안동도회에 참여하여 시를 지었는데, 시관이 그 시를 보고 감탄하여 과거에 응시하기를 권했다고 한다. 1390년(공양왕 2) 초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한성판윤을 거쳐 예조·공조·형조의 전서를 역임하였다. 조선이 개창된 이후에는 공조판서·형조판서·예조판서를 지냈다. 이후 병환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고향 구성(龜城)[지금의 영주시 영주동] 아래에 있는 자택에다 ‘소쇄헌(掃灑軒)’이란 현판을 걸고 만년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황유정은 평생 독서를 좋아하여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특히 『논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묘소]
황유정의 묘소는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덕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황유정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덕동에 후손들이 1799년(정조 23) 제단을 설치하였는데, 김약련(金若鍊)[1730~1802]이 제단비의 음기를 지었다. 1967년에 제단 앞에 재계할 수 있는 재실인 사모정(思慕亭)을 지었고, 1969년 김승학(金承學)이 기문을 지었다. 1975년에는 재실 옆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김진수(金晉秀)가 비명을 짓고, 장건덕(張建德)이 글씨를 썼다. 1995년 퇴락한 사모정 터에 추원재(追遠齋)를 중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