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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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石寺祖師堂-禪扉花 |
영어공식명칭 | Seonbihwa at Josadang Shrine of Buseoksa Temple(Folkta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부석사 조사당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의 유래와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부석사 조사당의 선비화」는 영주의 고찰 부석사(浮石寺)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義湘)이 사찰에 자신이 쓰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거기서 자란 나무가 바로 선비화(禪扉花)이다. 현재 부석사 선비화는 부석사 조사당(祖師堂) 처마 밑에 자라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부석사 조사당의 선비화」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의상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지팡이가 있다. 의상이 열반할 때 예언하기를 “이 지팡이를 비와 이슬에 맞지 않는 곳에 꽂아라. 지팡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우리나라의 국운이 흥왕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도들이 그 지팡이를 조사당 축대에 꽂았더니, 과연 음력 4월 초파일 무렵 버선 모양의 누런 장삼빛 꽃이 피었다. 그 후로 국운이 흥하고 나라가 태평할 때는 늘 잎이 나고 꽃이 피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는 잎은 나도 꽃이 피지 않다가, 광복과 함께 30여 년 만에 다시 꽃이 피었다고 한다.
부석사 선비화의 수령은 1,300여 년이라 하나, 높이는 불과 1m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영주 지역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노인들은 부석사 선비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이 나무의 잎과 가지를 달여 먹으면 임신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몰래 꺾어 가는 일이 많아, 나무가 자랄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는 철책을 하여 훼손을 막았는데, 그래도 피해가 계속되어 지금은 쇠그물을 처마까지 쳐서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부석사 조사당의 선비화」의 주요 모티프는 국운을 예견하는 자연물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의상이 쓰던 지팡이가 선비화, 즉 골담초로 자라나 그 줄기와 잎을 통해 국운을 예견하는 경우이다. 이야기 말미에 그 나무가 아들 낳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덧붙임으로써 선비화의 영험함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