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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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紹修書院-敬石 |
영어공식명칭 | Gyeongseok of Sosusewon Confucian Academy(Folkta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내죽리 152-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경’ 자가 새겨진 바위에 대한 이야기.
[개설]
「소수서원의 경석」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사액 전의 이름은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채록/수집 상황]
「소수서원의 경석」은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소수서원 앞에 죽계수(竹溪水)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그 천변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그 밑에는 깊은 소(沼)[늪]가 있다. 이 소는 별다른 이름이 없이 ‘백운동소’라고 불렸다. 통일신라시대 이 서원 터에는 숙수사(宿水寺)라는 큰 사찰이 지어졌다. 그래서 인근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수많은 참배자가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불행하게도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고, 백운동서원을 세우면서 절 내에 모셨던 불상들을 모두 소에다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들 불상의 한은 하늘에 사무쳐 비가 내리는 캄캄한 밤이 되면 소에서 뛰어오르는 소리가 첨벙첨벙 들려서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은 이 소리에 놀라 비가 오는 밤이 되면 늘 불안에 떨고 있었다. 혹은 행인들도 이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는 등 그 폐단이 막심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방비책을 마련하는 이가 없었다. 이 사연을 알게 된 주세붕은 소 위에 있는 바위에 ‘경(敬)’ 자를 음각(陰刻)하자, 이후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경’ 자를 쓴 것은 공경한다는 뜻이니, 이에 불상들의 한이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경’ 자를 새긴 것은 주자(朱子) 철학의 근본이 ‘경’에 있고, 소수서원에 제향된 안향(安珦) 사상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도 있다. ‘경’ 자가 새겨진 바위는 아직도 소수서원 옆에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소수서원의 경석」의 기본 모티프는 백운동서원을 창건하면서 숙수사에 있던 불상을 모두 늪에다 던져버림으로써 생겨난 현상이다. 이때 일어나는 현상들로 유생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주세붕이 바위에 공경할 ‘경’ 자를 새겨 넣자,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