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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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凰臺 |
영어공식명칭 | Bonghwangdae Pavilion(Folkta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봉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봉황대」 『영주시사』2에 「봉황대」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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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봉황대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봉암리 |
성격 | 설화|전설|지명유래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부자|봉황|탁발승 |
모티프 유형 | 인색|욕심|인과응보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봉암리에 전하는 봉황대 유래에 관한 이야기.
[개설]
「봉황대」는 봉황대(鳳凰臺)에 관한 지명유래전설이다. 어떤 부자가 바위를 깨뜨리자 봉황 세 마리가 날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인색함과 욕심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봉황대」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주시 안정면 봉암리 마을 뒷산에는 큰 바위가 있다. 옛날에 이 바위 앞에 고관대작을 지내고 부귀를 누리며 잘 사는 부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탁발승이 부잣집으로 찾아와 불경을 외우고 요령을 흔들면서 시주를 청하였다. 잠시 후에 대청 문이 열리면서 비단옷에 정자관을 쓰고 장죽을 입에 문 거만스러운 주인이 나왔다. “너는 이 집이 어떤 집인 줄 알고 시주를 청하느냐?”라고 호령하면서, 하인에게 이 탁발승을 당장 곳간에 잡아 가두라고 명령했다. 탁발승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가두어지게 되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여러 날이 지나니 탁발승은 정말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탁발승은 살기 위해 간계를 생각해냈다.
주인과 면담을 요청하여 애원하면서 말하기를,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그 은공으로 귀댁이 자손만대의 영화를 누릴 비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허황된 욕심에 눈이 먼 주인은 탁발승의 간계에 현혹되어 그의 요구 사항을 승낙하였다. 탁발승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저기 저 바위를 깨뜨리면 자자손손이 천추만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은 즉시 가두었던 탁발승을 석방하고 석공을 동원하여 수십 일간 바위를 깨뜨리는 작업을 했다. 드디어 바위가 두 개로 갈라지면서 그곳에서 봉황 세 마리가 나타났다. 한 마리는 학가산으로, 한 마리는 순흥 비봉산으로 날아가고, 남은 한 마리는 다리가 부러져 붉은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봉황이 날아간 후로는 자손만대의 영화는 고사하고, 세도 당당하던 그 부잣집은 흔적도 없이 망해 버렸다. 피 묻은 바위에는 아직도 핏자국만이 남아 있다. 봉황이 나왔던 바위라 해서 후세 사람들은 바위 이름을 ‘봉암’이라고 했으며, 또 이를 따라 마을 이름도 ‘봉암리’라고 하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 바위를 중심하여 대를 모으고 ‘봉황대’라 했는데, 선비 안창호(安昌鎬)가 ‘봉황대’ 삼대자(三大字)를 쓰고, 진석은(秦錫殷)이 글씨를 조각하였다.
[모티프 분석]
「봉황대」의 주요 모티브는 ‘인색’과 ‘욕심’, 그리고 ‘인과응보’이다. 인색하면서도 욕심만 많은 마을의 부자가 바위를 깨뜨리자, 그 안에서 봉황이 나오면서 결국 집안이 망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예부터 권선징악을 강조하던 우리나라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러한 사고를 반영하는 전설이다. 인색한 인물이 탁발승 대접이 박한 것을 크게 문제 삼는 이야기는 전국에 흔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