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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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溪西逸稿 |
영어공식명칭 | Gyeseoilgo(Literary Work) |
이칭/별칭 | 계서선생일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영 |
간행 시기/일시 | 1863년 - 『계서일고』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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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76년 - 『계서일고』 석판본 중간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성이성 |
편자 | 성종진 |
간행자 | 성종진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세로 22.3㎝|가로 15.1㎝ |
어미 | 상이엽화문어미 |
권수제 | 계서선생일고 |
판심제 | 계서선생일고 |
[정의]
1863년 간행된 조선 후기 영주 출신 문신인 성이성의 시문집.
[개설]
『계서일고(溪西逸稿)』는 성이성(成以性)[1595~1664]의 시문집으로 1863년(철종 14)에 간행되었다.
[저자]
성이성의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지평·전라도암행어사·강계부사 등을 지냈다. 특히 지방관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며, 사후에 청백리로 녹선되었고 영주 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후손 성종진(成鍾震)이 오천서원 유생들의 지원을 받아 1863년에 목활자본으로 『계서일고』를 간행하였다. 1976년에는 후손 성덕기(成德基)·성충식(成忠植) 등이 석판본으로 중간하였다.
[형태/서지]
『계서일고』는 2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권수제와 판심제에는 ‘계서선생일고’라고 적혀 있다. 행자수는 10행 20자이며, 반곽의 크기는 세로 22.3㎝, 가로 15.1㎝, 전체 크기는 세로 32.3㎝, 가로 20.8㎝이다. 사주쌍변에 유계(有界)이며, 주는 쌍행이다. 어미는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계서일고』의 권1에는 시 16수, 교서 2편, 제문 3편, 소 2편, 계사 7편, 서계 2편, 서(書) 14편과 「연행일기(燕行日記)」가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부록으로 권두인(權斗寅)이 지은 행장, 오광운(吳光運)이 지은 묘갈명, 아들 성문하(成文夏)가 지은 묘지, 34인의 만사, 김종준(金宗準)이 지은 제문, 이인행(李仁行)이 지은 봉안문,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계서초당기(溪西草堂記)」, 성이성이 지방관으로 재임한 담양·창원·강계의 「청백인정비명(淸白仁政碑銘)」, 신수(申濡)·김응조(金應祖)·이응기(李應蓍)·강백년(姜栢年)·금성휘(琴聖徽)·최응천(崔應天)이 성이성에게 준 증유(贈遺) 등이 수록되었다.
[의의와 평가]
『계서일고』는 17세기 초·중반 조선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