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486 |
---|---|
한자 | 陽智縣 |
영어음역 | Yangji-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1399년(정종 1)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본래는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양촌부곡(陽良村部曲) 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다. 1399년(정종 1)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부곡을 현으로 소속시키면서 양지현으로 고쳐 처음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감을 파견했고, 읍치를 광주의 임내(任內)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관련기록]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양지현읍지(陽智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양지현읍지(陽智縣邑誌)』(1842)·『대동지지(大東地志)』·『양지현읍지(陽智縣邑誌)』(1871)·『양지군읍지(陽智郡邑誌)』(1899)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세종실록』에 의하면, 동쪽으로 이천과 8리, 서쪽으로 용인과 10리, 남쪽으로 양성과 35리, 북쪽으로 광주와 10리 떨어져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서울과의 거리가 111리로 기록되어 있다. 관원으로는 중앙에서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이 파견되었다.
읍내면(邑內面)에는 교동(校洞)·홍문동(紅門洞)·관동(鸛洞)·암곡(巖谷)·용곡(龍谷)·남촌(南村)·등촌(藤村)이 속해 있고, 주동면(朱東面)에는 도창리(都倉里)·산막동(山幕洞)·평촌(坪村)·도약리(搗藥里)·공세동(貢稅洞)·추계(秋溪)·식송(植松)·유점(鍮店)·금곡(金谷)이 속해 있었다.
주서면(朱西面)에는 송동(松洞)·반정(盤亭)·정문(旌門)·신평(新坪)·마전리(麻田里)·김량리(金良里)·해곡(海谷)·광곡(廣谷)·식지곡(食只谷)·호동(虎洞)이 속해 있고, 주북면(朱北面)에는 대대리(大垈里)·박성리(朴成里)·흑암(黑巖)·정수리(定水里)가 속해 있었다.
고안면(高安面)에는 후동(後洞)·백동(栢洞)·중상리(中上里)·대행리(大行里)·입동(笠洞)·주천(注川)·봉리(峯里)가 속해 있고, 박곡면에는 기안리(機安里)·청계(淸溪)·전석리(磚石里)·신창리(新倉里)가 속해 있고, 제촌면에는 능동(菱洞)·당촌(唐村)·국동(菊洞)이 속해 있었다.
고서면(古西面)에는 대평리(大坪里)·주곡(酒谷)·창리(倉里)·상갈리(上葛里)·하갈리(下葛里)가, 고동면(古東面)에는 쌍령리(雙嶺里)·봉지곡(奉芝谷)·봉황리(鳳凰里)·화산리(花山里)·월동(月洞)·삼은리(三隱里)·기동(基洞)·향림(香林)이 속해 있었다.
고북면(古北面)에는 약산리(藥山里)·염치(鹽峙)·유역리(柳驛里)·하가리(下佳里)·상가리(上佳里)가, 목악면(木岳面)에는 신기리(新基里)·구봉리(九峰里)·후동(後洞)·학일리(鶴日里)·목악리(木岳里)가 속해 있었다.
산천으로는 정수산(定水山)·신화산(神花山)·어은산(御隱山)·성륜산(聖輪山)·구봉산(九峯山)·추계(秋溪), 역원으로는 승보원(承寶院), 사찰로는 신림사(神林寺)·쌍령사(雙嶺寺)·용암사(龍巖寺)·보해암(普海菴) 등이 있었다.
토성(土姓)으로 안씨·박씨·유씨(柳氏), 고안(高安)의 성씨로 문씨와 망성(亡姓) 박씨·이씨·김씨, 추계(秋溪)의 토성 안씨, 망성 이씨·지씨가 기록되어 있다. 지초(芝草)·약재·낙석(洛石) 등의 토산물이 있었고, 읍치 남쪽의 함항(檻項)에 자기소(磁器所), 동쪽의 신림리에 하품의 도기소(陶器所)가 있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호구는 346구이고,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 37인, 선군(船軍) 68인이며, 토지는 간전(墾田) 2,068결로 오곡·소두(小豆)·뽕나무·마(麻)의 재배에 토양이 적당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장시로 주동면의 개천장(介川場), 점막으로 고안면의 진촌점(鎭村店), 주서면의 해곡점(海谷店) 등이 신설되었고, 양지현감이 여주진관병마절제도위(驪州鎭管兵馬節制都尉)를 겸직했다.
[변천]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으로 양지군으로 변경되어 충주부에 편제되었다가 1896년 4등군으로 지정되어 경기도 관할이 되었다. 1914년 3월 전국의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면서 폐치되어 경기도 용인군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일제식 지명을 변경하면서 내사면과 외사면을 양지면과 백암면으로 고쳐 현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