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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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福 |
영어음역 | Kim Chibok |
이칭/별칭 | 수지,졸암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가계]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도를 잘 알고 시행하였으며, 극진하고 성실하게 부모를 공경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간절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탁발승이 나타나 비방을 알려 주었는데 이는 참으로 구하기 힘든 약이었다.
전전긍긍 애태우던 중 부인이 이유를 묻자 “아버지의 병환에는 15세 난 동자의 머리를 구하여 삶아 드려야 한다 하오.”라고 그 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은 “자식은 또 낳으면 되는 일이지만 부모는 한번 가시면 돌이킬 수 없으니 우리 애를 죽여서라도 구환합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의논하고 서당에 다녀오는 아들을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다가 비수로 찌른 후 그의 목을 베어 가마솥에 끓였는데 솥뚜껑을 열어 본 즉 아이의 머리는 없어졌고 커다란 인삼의 뿌리가 나왔다. 이는 산신령이 효성을 시험하여 산삼으로서 아들의 모습으로 보이게 했던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부친의 병환은 씻은 듯 나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부친이 천수를 다하자 지극히 슬퍼하였다.
[상훈과 추모]
그 효행이 뛰어나 모든 사람이 제청하여 1811년(순조 11)에 정려문이 내려졌다.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정려문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