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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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孝烈 |
영어음역 | Chung Hyo Yeol |
영어의미역 | Loyalist,Filial Son, Vertuous Woma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
집필자 | 이인영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들.
[개설]
충효열이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녀자가 지조를 지켜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행실을 통칭한 것으로 이를 삼강행실이라고 하였으며 유교 이념의 기본 덕목이다.
[충]
충(忠)은 삼강행실의 첫 번째 덕목이다. 용인의 대표적 인물은 포은 정몽주이다. 그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충의백(忠毅伯)으로서 사표가 되고 있다. 이후 그의 영향을 받아 용인에서는 많은 충신들이 배출되었다.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여말의 인물로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中仁)과 남곡 이석지(李釋之) 그리고 이성계의 생질인 가천재(嘉川齋) 조사(趙師)가 있다.
그 외에 조선시대에 충신으로 정려된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묵계 유복립, 안골포 해전에 참전한 안홍국, 이순신의 조카 이완, 상주방어사 한명륜, 경기도관찰사 심대, 윤섬, 윤계, 김충수 등이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도에서 순절한 죽창 이시직과 청나라에 잡혀가 순절한 추담 오달제, 근왕병 이찬조 등의 충신 정려문이 전하고 있다. 이 밖에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충노 피무작금의 행실이 전하기도 한다.
[효]
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중요한 덕목으로 존재해 왔다. 용인에는 20여 명에 이르는 효행 유적이 전하고 있다.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는 어진혁·어사랑·어운해 등 삼대 효자 정려문이 전하고 있다.
효행으로 표정되어 비와 정려가 세워진 인물로는 김상익·김영희·김집·김치복·김함·목원규·박인영·송지겸·안기명·안희중·오명항·이계복·이규헌·이원복·이희동·정응규·정의현·정재위·정한영·최춘봉·한구 등이 있고, 문헌으로 전하는 사람으로는 오민경·이승진·김상술·김새·김유·최호 등이 있다.
[열]
효행뿐 아니라 남편을 따라 자결하여 일부종사의 열행으로 이름을 남긴 열녀들의 행실도 많이 전하고 있다. 조사된 바로서는 용인에는 10여 명에 이르는 열부가 있다. 대개 남편의 거상이 끝나는 날 자결하여 뒤를 따랐거나, 남편을 위해 절사하였거나, 사주단자로 혼약만 맺은 남편을 따라 순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남편 탈상 후 자결한 안재복의 처 남궁씨, 단지수혈 후 절사한 한용주의 처 함양박씨, 남편 뒤를 따라 자결한 박래영의 처 연안이씨, 남편이 순절하자 뒤를 따라 자결한 이시직의 처 용인이씨, 정절을 지켜 자결한 김배의 처 온양정씨, 남편 따라 자결한 이선량의 처 강화최씨, 남편 따라 자결한 김익성의 처 청주한씨, 혼약 맺은 남편 삼년 거상 후 자결한 김수로의 처 상주황씨, 남편 따라 자결한 김상동의 처 홍씨가 열녀로 표정되었다.
그 외 효부로서는 김유성의 처 안동권씨, 차성태의 처 박씨, 권석기의 처 순흥안씨, 유봉학의 처 오씨, 김달명의 처 조씨 등은 효부로서 정려되었고 정려문이 전하고 있다.
[충의와 효열의 고장]
효자나 효부 또는 충신이 당대에 한 사람 나오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용인에서는 삼대 효자와 삼대 효부를 배출되었으며, 부자와 며느리가 함께 충신 효자 열녀로 표정되기도 해 충의와 효열의 고장임이 입증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10월 19일에 벼슬 없이 선비로 있던 양지현 월노동의 김충수는 의병을 모집하여 죽산의 청룡산에 있던 왜적을 쫓아내려다가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적에게 사로잡혔다. 이를 본 아들 김함은 그를 구하고자 적진에 돌입하며 왜적 몇 명을 격살하였으나 역시 잡혀 같은 날 순사하니 부친은 죽어 충신이 되었고 아들은 죽음으로써 효를 다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충수의 손부 온양정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피난중에 적군이 엄습해 오자 어린 두 딸과 함께 연못으로 뛰어들어 정조를 지켜 열녀로 표정되었으며, 지금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자래동에 무덤이 남아 있다.
용인의 함종어씨 집안에서 어세공의 후손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된 어진혁이 효자로 정려된 후 그의 아들 어사랑 역시 부친의 병중에 6년 동안 시탕 갈력하여 효자로 정려되고 통덕랑에 증직되었다.
어사랑의 아들 어운해 역시 부친의 등창을 입으로 빨아내고 변을 맛보는 등의 효행으로 효자로 표정되고 통덕랑에 증직되어 일문에서 3대 효자가 배출되었다. 그리고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매능동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효자 김치복 이후 연속 4대의 열녀와 효부를 배출하여 정려문이 중복되어 전하고 있음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