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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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禧重 |
영어음역 | An Huijung |
이칭/별칭 | 여중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중(汝中).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안향(安珦)의 21세손이다.
[활동사항]
안희중(安禧重)[1728~1800]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43년(영조 19) 6월 그믐날 밤 폭우가 쏟아져 사당이 무너지려 하였으나 부모님은 모두 병석에 누워 있었다. 당시 16세였던 안희중은 급히 사당으로 뛰어 들어가 대들보를 붙잡고 하늘에 호소하자 폭우가 잠잠해졌다. 그리하여 안희중은 무사히 신주를 받들고 나올 수 있었다.
부인인 김해김씨는 스무 살에 4살 연하의 안희중에게 시집왔었는데, 사당이 무너지려 할 때 같이 고생하였으며 집안 어른들을 모시는 데에도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1750년경 백부를 비롯한 고모 등 삼남매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마음을 상한 할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안희중은 할아버지를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한 의원이 요양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함에 따라 당시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엄실촌에 있던 정씨 집에서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북두칠성에 기도하면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다. 이에 안희중은 추운 겨울임에도 매일같이 목욕재계하고 할아버지 대신 자신이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덕분인지 할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였는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미친개에게 물려 위독하게 되었다. 그러자 안희중은 40여 일 동안이나 입으로 독기를 빨아내어 할머니를 낫게 하였다.
1768년에는 할아버지가 천수를 다하고, 1772년에는 할머니가 천수를 다하자 작은 아들임에도 큰 조카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장례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였다. 제사에는 소홀함이 없었으며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먼저 사당에 올렸다가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상훈과 추모]
1794년(정조 18) 조정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벼슬을 내리고 상금을 하사하였다. 안희중 효자정문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으며, 내용은 “효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안희중지려 상지사년 갑인 삼월일 명정(孝子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安禧重之閭上之四年甲寅三月日銘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