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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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영어음역 | Seongeo |
영어의미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미영 |
[정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공무를 담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정치 권력의 정통성 부여 기능, 국민의 이익 표출 및 집약 기능, 정치적 충원 기능을 한다. 정치 선거에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 단체장 및 지방자치 의회 선거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16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와 17번의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으며, 5·16 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1991년 이후 지방자치 단체장 및 자치 의회 선거가 실시되어 오고 있다.
[대통령 선거]
1. 자유당 집권 시기
초대 대통령 선거는 1948년 5월 31일 제헌 의회가 개헌된 이후 이승만이 의장으로 선출되고 7월 17일 「정부조직법」이 통과됨에 따라 7월 20일 「헌법」 제53조에 의해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부통령으로는 이시영이 선출되었다.
1952년 실시된 선거에서 75.3%를 득표한 이승만이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당시 용인 지역에서는 80% 이상이 투표에 참가하였으며 용인시 투표자 수 40,218명 중 33,186명이 이승만에게 투표하였다. 한편 같은 날 실시된 제3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함태영이 3백만 표 가까이 얻어서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대중적 지명도가 높았던 이범석이 1백만 표 이상의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나 용인군에서는 자유당으로 출마한 이범석이 함태영보다 2천 표를 더 얻었다.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으로 3선 연임제 제한을 삭제한 이후 치러진 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승만이 당선되었으며 부통령에는 장면이 당선되었다. 용인 지역에서는 이기붕이 더 많은 득표를 하였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는 그 유명한 3·15 부정 선거로 이승만의 하야를 초래했으며 국회는 의회 책임제로 개헌하고 해산했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1960년 8월 12일 민주당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 박정희 집권 시기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정 아래 실시된 1962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제로 복귀하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박정희가 윤보선에게 20만 표 차이로 승리하였다. 경기도에서는 오히려 윤보선이 앞섰으나, 용인군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았다.
1972년 11월 21일 확정된 유신헌법에 의해 박정희는 19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에서 대의원 2,359명 가운데 99.9%의 지지로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선거에 앞서 12월 15일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용인군 선거인 수는 48,759명이었다. 용인군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입후보자는 42명으로 평균 약 4:1의 경쟁률을 보였다.
3. 직선제 개헌 이후
1987년 6월 항쟁 결과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임기도 5년 단임제로 복귀되었다. 16년만의 부활되는 직선제라 투표율도 매우 높아서, 전국적으로 89.2%에 달했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 야당에서는 김영삼·김대중이 출마하였다. 노태우는 역대 당선자 중 가장 낮은 지지로 당선되었다. 용인 지역에서는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15대 대통령 선거는 야당 후보인 김대중이 당선됨으로써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경기 지역에서도 김대중에 대한 지지가 여당 후보인 이회창보다 약간 높았는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용인 주변 지역에서는 이인제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선거]
1948년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인군에서는 유기수·박영조·민경식이 후보자로 출마하였는데 모두 무소속이었다. 이 중 22,468표를 얻은 민경식이 당선되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선거에서는 유기수·목성표·정기섭·구철회·신용철·민경식·장기용·최인술이 출마하였는데, 민국당 민경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소속이었다. 이중 유기수가 8,64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3대 선거는 1954년 5월 20일에 있었다. 이때부터 당의 공천 제도가 도입되었다. 자유당의 신의식과 무소속의 목성표·구철회·손주석이 출마하여 신의식이 18,345표로 당선되었다. 제4대 선거는 1958년 5월 2일에 있었고 민주당 구철회가 당선되었다. 4·19 이후인 1960년 7월 29일의 제5대 선거에서는 민의원은 민주당의 김윤식이 당선되었고 참의원 선거는 도 단위로 2~8명을 선출하였다.
5·16 쿠데타 후에 치러진 제6대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공천을 받은 서상린이 당선되었고 제7대와 8대에도 내리 당선되었다. 제9대와 10대는 유신헌법으로 중선구제로 변화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은 유신정우회 소속 의원 제도가 생겼고 선거에서는 민주당(후에 신민당) 소속 유치송이 당선되었다.
신군부 등장 후인 제11대와 12대에는 민정당 정동성, 민한당 조종익이 당선되었다. 6월 항쟁 후인 1988년 제13대와 1992년 제14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 이웅희가 승리하였다. 2000년에 있은 제16대 선거에서는 선거구가 두 개로 늘었는데, 두 곳 모두 민주당의 남궁석·김윤수가 각각 당선되었다.
[지방단체장 및 지방자치의회 의원 선거]
1952년 4월 25일에 용인군 12개 면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용인면 13명, 기흥면 12명, 포곡면 11명, 모현면 11명, 구성면 12명, 수지면 11명, 남사면 12명, 이동면 12명, 고삼면 10명, 원삼면 12명, 외사면 13명, 내사면 11명이 면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제2차 지방자치단체 선거로, 도의회 의원 선거와 면장 선거, 면의원 선거가 있었다.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나복룡과 김정순이 당선되었다. 제3차 선거는 1960년 12월에 있었다. 도 의의회 의원으로는 이학린과 신용철이 당선되었다.
지방자치제 선거가 부활된 후 1991년 3월 26일에 동시 선거가 실시되었다. 군 의회 의원은 용인읍 3명, 기흥읍 2명, 기타 면 각 1명씩 14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도의회 의원으로는 무소속 조영희와 민주자유당 김학규·곽만수가 당선되었다. 도지사에는 민주당 신광균이 당선되었다.
1995년의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16명을 선출하였으며, 광역의원으로 민주당 이성근, 민자당 이강우·홍영기가 당선되었다. 자치단체장인 군수 선거에서는 민자당의 윤병희 후보가, 광역단체장인 도지사에는 민자당의 이인제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8년의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시의회 의원 14명이 선출되었고, 광역의원으로는 한나라당 홍영기와 국민회의 이성근이 당선되었다. 용인시장에는 무소속 윤병희가, 경기도지사에는 국민회의 임창열이 당선되었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2002년에 실시되었다. 용인시의회 의원으로 21명이 선출되었고, 도의원으로 한나라당 소속 홍영기·조봉희·김대숙·우태주가, 용인시장에는 한나라당 우정문이, 도지사에는 한나라당 손학규가 각각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