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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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窯址 |
영어음역 | Doyoji |
영어의미역 | Kiln Sites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집필자 | 김재열 |
[정의]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던 터.
[개설]
용인 지역에는 고대에서 조선시대 말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각종 도자기가 활발히 생산되었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요지와 고려시대의 청자·백자·도기 요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백자·옹기 요지들이 각지에 두루 분포하고 있다.
[조사 경위]
용인 지역의 도요지에 관한 기록으로 15세기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옛 처인의 요산동리(窯山洞里)에 하품(下品)의 자기소와 감암리(甘岩里)에 하품의 도기소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양지현에는 남쪽의 함항(檻項)에 하품의 자기소와 동쪽의 신림리(新林里)에 하품의 도기소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용인 지역의 도요지 조사는 1930년대부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에 호암미술관이 이동읍 서리의 고려백자 가마 터(사적 제329호)를 발굴, 조사하면서 도자사적인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후 관련 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인 지표 조사가 이루어지다가, 1999년에 용인시와 한신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체계적인 도요지 조사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가 책자로 발간되었다. 최근에는 용인 지역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자료들이 첨가되고 있다.
[분포 현황]
지금까지 조사된 도요지는 용인 전 지역에 약 50곳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시대별·종류별로 대략 살펴보면, 먼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기와 가마가 서울·경기 지역에서 두 번째로 수지읍 성복동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현재 9~10세기 청자와 백자가 생산될 무렵에 만들어진 매우 중요한 가마 두 곳이 이동읍 서리에 남아 있다. 또한 11~12세기에 청자를 주로 생산했던 구성읍 보정리 요지가 발굴, 조사되었고, 죽전동에서는 고려도기 가마 유구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선시대에 용인에서는 분청사기 가마가 운영되었지만, 인근 광주에 관요(官窯)가 설치되면서 백자 위주의 요업으로 전환하여 백자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분청사기 요지는 이동읍 서리, 원삼면 학일리, 백암면 고안리·석천리, 남사면 완장리에 있다.
15~16세기의 백자 요지는 용인시 처인구 호동·운학동·해곡동과 양지면의 남곡리·대대리, 이동읍의 천리·묵리 등지에 있다. 17~18세기의 요지는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기흥구 지곡동, 양지면 대대리, 이동읍의 서리·화산리, 남사면의 원암리·완장리 등에 있다. 이 중 철화 백자류가 대대리·서리·완장리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와 말기에 대규모로 운영된 가마들도 남아 있다. 수지구 신봉동, 이동읍 서리·묵리, 원삼면의 문촌리·학일리, 백암면 용천리, 남사면 원암리 등에 19세기 가마 터들이 존재한다. 이외에 서민 생활에 특히 유용했던 옹기와 흑유자기들을 생산했던 가마들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인의 도요지는 용인 지역의 도자 산업이 오랜 시간 동안 번창했음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도자기의 나라로 칭송받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용인은 도자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