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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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남쪽 한강 부근에 있었던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혹은 관진(關津)·진관(津關)]이나 도(渡)·도진(渡津)을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관선(官船)인 진도선(津渡船)[나룻배]를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이나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유명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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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구곡역(仇谷驛)은 고려 시대에는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한양에서 춘주[춘천] 방면을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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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운영된 군사용 통신 수단. 봉수는 조선 시대 통신 수단으로 설치 운영된 것으로 긴급한 군사상의 연락 사항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중앙에 전달하는 데 이용되었다. 전국 620여 개의 높은 봉우리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서울의 목멱산(木覓山)[지금의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23년 2월 26일 기사에 의하면,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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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수’라는 땅 이름은 원래 양주 백석과 감악산에서 내려오는 두 물줄기가 합쳐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상수(相水)]인데, 이곳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서식하므로 또 다른 의미가 발생하였다[상수(橡樹)]. 일설에는 고려 말의 유신(遺臣)으로 조선 왕조에 관리로 나아간 홍지(洪智)와 관련된 땅 이름이라고도 한다. 즉 홍지가 태조 때 죽으니, 태조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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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성씨(姓氏).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城主),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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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 양주도호부[지금의 경기도 양주시]에 해당하는 부분. 『세종실록지리지』는 1424년(세종 6) 편찬에 착수하여 1454년(단종 2) 총 8책 7권[권 149~155] 분량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중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부분은 제1책 권149에 수록되어 있다. 양주도호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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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진전읍 내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쌍수역(雙樹驛)은 고려 시대에는 상수역(桑樹驛)으로 불렸으며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 관내 풍양현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남경]에서 포천·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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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466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도호부는 조선 시대 군(郡) 위에 두었던 지방 관아로, 1406년(태종 6) 도호부를 종3품관으로 하여 정3품관인 대도호부와 목(牧) 아래에 두었다. 1415년에는 1,000호 이상 되는 지역을 도호부로 규정하여 해당되는 군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는데, 양주부는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전략적 위치의 중요성과 태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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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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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역은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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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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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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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공자(孔子)의 정치 이념, 학문, 의례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 유교(儒敎)는 공자가 제창한 정치 이념, 도덕 수양의 방법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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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묵은면(默隱面)과 현내면(縣內面)의 대부분 지역을 합치면서, 묵은면의 ‘은’자와 현내면의 ‘현’자를 따서 은현면(隱縣面)이라고 하였다. 은현면이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묵은면과 현내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은현면은 삼국 시대부터 별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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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2011년 10월 현재 양주시의 인구는 20만 5945명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이 7,866명[3.8%]이고 세대수는 7만 6197세대이다. 행정 구역 면적이 310㎢이므로 인구 밀도는 664명/㎢에 달한다. 인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양주2동이고, 회천2동과 회천3동이 뒤를 잇는다. 반면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은 회천4동이다. 양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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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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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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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평구역(平丘驛)은 고려 시대에는 남경[양주]에서 평창이나 봉화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평구도(平丘道)의 중심 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찰방(察訪)[종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