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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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경신리(庚申里)라는 땅 이름은 상수리 남양 홍씨 종중산인 망당산에서 볼 때 위치가 정경신방(正庚申方), 즉 서남방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양주시의 다른 지역 땅 이름과 아주 다른 특이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경신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적성군 남면 상수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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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의 천보산 자락에 위치하며,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왕실 사찰(王室寺刹)인 회암사가 있던 곳이다. 조선 전기의 최대 사찰이자 현재 양주시의 유서 깊은 사적지인 회암사를 그 역사적 내력, 회암사와 인연을 맺은 고승들, 가람의 구조, 유물 들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회암사는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찰(摠本刹)이었으며, 조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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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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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지도. 고지도란 통상 근대적 지도 제작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를 일컫는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고지도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그 이전 것은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양주의 영역은 오늘날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연천군 전곡읍·청산면 일대에까지 걸쳐 있었기 때문에 당시 그려진 양주 지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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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성황당. 국수당은 관아터 및 유양초등학교 뒤쪽에 있는 골짜기와 골짜기에 있는 성황당[서낭당]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이다. 원래 국사당(國師堂)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그 수호신사(守護神祠)로서 북악산과 남산[목멱산] 꼭대기에 두었던 사당이다. 각 지방에서도 민간 신앙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을 하는 장소를 마련하고 고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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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이성계(李成桂)의 딸인 숙신옹주(淑愼翁主)와 사위 홍해(洪海)의 조선 후기 사당. 숙신옹주는 조선 제1대 국왕인 태조 이성계와 후궁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401년(태종 1) 태조가 옹주에게 택지와 집을 주어 자손이 거주할 수 있게 한 문서인 숙신옹주대사급성문(淑愼翁主家垈賜給成文)이 현존한다. 숙신옹주의 남편인 홍해의 봉호는 당성위(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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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 남을진(南乙珍)의 묘와 신도비. 조선 시대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감악산 남선굴에 은닉하면서 삶을 마감한 남을진의 묘와 신도비이다. 남을진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아버지는 남천로(南天路)이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1368년(공민왕 17) 현량과에 급제하였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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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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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洞祭)는 동신(洞神)에게 복을 빌고 재액(災厄)을 멀리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 제사이다. 양주시에서도 각 마을마다 이 같은 동제를 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양주시의 지형은 주로 산이 많기 때문에 산제사, 산신제의 성격을 띠며, 도당굿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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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마라니라는 이름의 유래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천마산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역마(驛馬)를 탔을 때 말이 땀을 많이 흘려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도읍을 정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타고 있던 말이 땀을 많이 흘린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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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지정 주체에 따라 국가 및 도·시 지정 문화재[향토 유적]로 구분되며, 유형에 따라 유형 문화재·무형 문화재·기념물 등으로 나뉘며,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나뉜다. 2011년 현재 양주시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9점[보물 3점·사적 2점, 천연기념물 1점, 중요 민속문화재 1점, 국가 무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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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산. 사리산(舍利山)은 산줄기가 마치 닭의 발처럼 세 줄기로 나뉘어 있어 원래 계족산(鷄足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이 산에 있는 절의 부도 안에서 사리가 나왔으며 그것을 계기로 이름을 사리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양주시 남면 사람들도 계족산보다는 사리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태종실록(太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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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 양주도호부[지금의 경기도 양주시]에 해당하는 부분. 『세종실록지리지』는 1424년(세종 6) 편찬에 착수하여 1454년(단종 2) 총 8책 7권[권 149~155] 분량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중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부분은 제1책 권149에 수록되어 있다. 양주도호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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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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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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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 간행된 경기도 양주 지역에 대한 지리지.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조선 후기 양주목(楊州牧)을 대상으로 한 지리지로 오늘날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일부 연천군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읍지이다. 19세기 중반 양주의 지역 사정과 정보를 전반적으로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양주군읍지』의 저본은 확실치 않으나 19세기 중반 또는 광무 연간[1897~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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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466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도호부는 조선 시대 군(郡) 위에 두었던 지방 관아로, 1406년(태종 6) 도호부를 종3품관으로 하여 정3품관인 대도호부와 목(牧) 아래에 두었다. 1415년에는 1,000호 이상 되는 지역을 도호부로 규정하여 해당되는 군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는데, 양주부는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전략적 위치의 중요성과 태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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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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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부터 141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도읍을 한양, 즉 예전의 양주로 옮기면서 옛 양주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양주를 양주군(楊州郡)으로 강등시켰다. 1395년(태조 4) 고려 시대 견주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이주시킨 후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양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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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 동쪽으로 포천군, 서쪽으로 파주시 및 고양시,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및 의정부시, 북쪽으로 동두천시 및 연천군과 각각 접해 있으며, 동서의 거리는 20㎞, 남북의 거리는 30㎞이다. 대체로 산지가 많이 발달해 있으며, 평지는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어 영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감악산(紺嶽山)[675m], 양주시의 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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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친환경 농·특산물 공동 브랜드. ‘어하둥둥’이라는 이름은 한때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머물러 왕이 내린 마을이라는 뜻의 ‘어하(御下)’와 양주별산대놀이 등 전통문화의 멋과 흥을 상징하는 ‘둥둥’의 합성어로, 임금에게 진상되는 최고의 청정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여 신뢰를 얻겠다는 취지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아니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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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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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무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득휴(得休). 아버지는 우부대언(右副代言) 유총(柳總)이다. 아들은 유원지(柳源之), 유은지(柳隱之), 유연지(柳衍之)이다. 손자는 유종(柳淙)이다. 유만수(柳曼殊)[?~1398]는 고려 공민왕 때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올랐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이르렀다.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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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증조할아버지는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이고, 할아버지는 사용(司勇) 윤희림(尹希林)이며, 아버지는 군자감 정 윤변(尹忭)이다.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은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1558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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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전주 이씨 주부공파의 집성촌. 전주 이씨 주부공파(主簿公派)의 파시조는 목조(穆祖)[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의 동생인 주부(主簿) 이영습(李英襲)이다. 전주 이씨 덕도리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이영습의 12세손인 이영식(李永式)으로, 조선 선조 때에 진주목사를 지냈다. 1810년경 선암리 보막동으로 이주한 뒤 후손들이 현재까지 약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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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에 묘소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 아버지는 감찰 대부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양생(鄭良生)이다. 어머니는 찬성 안축(安軸)의 딸 순흥 안씨이다. 첫째 부인은 참의 이인(李嶙)의 딸 고성 이씨이고, 둘째 부인은 좌윤 윤승경(尹承慶)의 딸 파평 윤씨이다. 아들은 정효경(鄭孝卿), 정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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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충신 조견(趙狷)과 남을진(南乙珍)의 조선 후기 사당. 정절사(旌節祠)는 고려 말의 충신인 조견[1351~1425]과 남을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조견은 1392년(태조 1) 상장군으로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데 앞장서 조선이 개국된 후 개국 공신에 책록되었다. 남을진은 조선이 개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적성(積城) 감악산(紺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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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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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여말 선초의 무신. 본관은 한양. 호는 퇴촌(退村). 중국에서 귀화한 조지수(趙之壽)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순후(趙珣厚)이고, 아버지는 조세진(趙世珍)이다. 조선 개국공신 1등 조인옥(趙仁沃)과 개국공신 2등 조온(趙溫)과 친척으로, 그들의 출세에 힘입어 한양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와는 사돈 관계이다. 조영무(趙英茂)[?~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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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행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에 관한 신앙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 양주시에는 전통 시대부터 민간 신앙, 불교 등이 주민들의 신앙 대상이 되었으며, 1870년경 천주교, 1900년경부터 개신교가 전파되었고, 1970년대부터 다양한 교파의 기독교회가 세워져 활동하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하여 양주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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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에 조성되어 있는 등산로. 천보산 등산로는 회암사로부터 천보산[423m] 정상까지의 등산로이다. 인위적으로 다듬은 코스는 아니며 조선 시대의 유명한 사찰 터인 양주 회암사지와 천보산을 하나의 코스로 설정하여 천보산 등산로로 구분하고 있다. 찾는 이들을 위해 안내판을 비롯한 등산에 편리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천보산에서 서북 방향으로 직선거리 약 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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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의 하나였던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한양(漢陽)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한양 조씨의 시조는 조지수인데, 덕원부 용진현에서 세거하던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조지수의 후손들이 한양으로 이주하고 그곳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파는 안정공파(安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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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과 어둔동 및 의정부시 녹양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산. 홍복산(弘福山)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가 전해 오고 있다. 먼저 서울의 주산이 되어 백성들의 복을 누리게 하는 산이라는 데서 홍복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 종루(鐘樓)처럼 생겨서 온 겨레를 깨우치는 산이라는 이야기나 부처 모양으로 생겨서 산이 보이는 지역에서 문장가나 명필가가 많이 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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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명철(明哲). 아버지는 동지 홍상부(洪尙溥)이다. 부인은 개성 왕씨로 왕족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자녀는 4남 3녀를 두었다. 홍지(洪智)는 고려 말 임진 도승을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정6품 벼슬인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을 내렸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출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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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홍지(洪智)의 묘. 홍지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철(明哲)이고, 아버지는 홍치(洪値)이다. 고려 유신(遺臣)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친구 사이였다.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낮추어 임진도승(臨津渡丞)이 되었다가 나중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부하고, 절의를 지켜 낙향하여 시와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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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 있는 박물관. 양주시에서 회암사지를 경기 북부 최고의 관광지와 역사 교육의 장으로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회암사지 발굴 조사, 유적 및 단지 정비 등 회암사지 종합 정비 계획[총 사업비 580억 원] 중 하나로 2012년 10월 19일 회암사지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총 사업비는 127억 원이 투입되었다. 회암사지 종합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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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 보광전 터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동제 금탁(琴鐸). 금탁은 불구(佛具)의 하나로 보통 풍경(風磬) 또는 풍탁(風鐸)이라고 부르며, 경세(警世)의 의미를 지닌 도구로서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풍탁은 처마 끝에 매다는 작은 종으로,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