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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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수도 한양이 만들어지면서 원래 한양[옛 명칭 양주]에 살던 사람들을 동촌 대동리로 이주시켰다가, 다시 대동리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견주의 읍치로 이전되면서 주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양주목의 읍치가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되면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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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광석면(廣石面)은 너른 들판이라는 뜻의 ‘너븐들’을 그대로 한자로 써서 ‘넓다’는 뜻의 ‘광(廣)’자와 들판을 뜻하는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를 합하여 광석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광석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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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묵은면(默隱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인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 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 있고 황무지가 많은 척박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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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백석(白石)’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는 용어로 전국 어디에나 존재한다. ‘백석’이라는 땅 이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흰 돌이라는 자연물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백석(白石)’이라고 했다기보다는 큰 들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한돌’이 변하여 ‘한돌 → 흔돌 → 흰돌 → 백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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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양주부(楊州府)의 치소를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고려시대 견주(見州)의 옛터]로 옮기면서 주내(州內)라 불리게 되었다. 1506년(중종 1) 읍치를 다시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하면서 주내는 조선 전기 양주목의 읍치가 있었다는 뜻에서 고주내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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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서석적면(西石積面)은 양주목의 서부에 있으며, 들판이 거듭 계속되고 있다는 뜻에서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와 ‘거듭된다’는 뜻의 ‘적(積)’자를 합하여 서석적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석적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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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 소재의 목장 전답 중 새로 개간해 경작하는 토지를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장 신기전답 양안(楊州牧場新起田沓量案)」은 정묘년(丁卯年) 5월 양주목에서 동목 소재 목장(牧場)의 신기전(新起田)을 측량해 만든 책이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목장 전답 중 금년에 새로 경작하게 된 토지의 면적을 파악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작성 연대가 ‘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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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 소재 총융청(摠戎廳) 소속 둔전의 도전(賭錢)을 파악해 정리한 책. 「양주 소재 총둔 도전 수봉책(楊州所在摠屯賭錢收捧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총둔(摠屯), 즉 총융청 소유 둔전(屯田)에서 거두어들인 도전의 수입을 파악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도전이란 도지(賭地)라고도 하는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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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경기도 양주목에 있던 명선공주방(明善公主房) 소유의 토지를 다시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1683년(숙종 9) 명선공주방에서 경기도 양주목 고양주면(古楊州面) 항동리(項洞里)[지금의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및 자마장리(雌馬場里)의 토지를 매입했는데, 1816년(순조 16) 이 토지를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內需司)에 이관시키게 되었다. 「양주목 고양주면 소재 명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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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지방관 사망 시 제공되는 인력과 운송 수단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책. 「양주목 과경 상행 담군 가우 대전 마련 절목(楊州牧過境喪行擔軍駕牛代錢磨鍊節目)」은 1857년(철종 8) 12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지방관인 감사·군수·찰방 등이 사망했을 때 제공되는 상담군(喪擔軍)[상여를 옮길 인력꾼] 및 상가우(喪駕牛)[상례 때 사용되는 우마차]의 준비 비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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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경기도 양주목에 있는 독안산(禿案山)에 외부인이 묘를 조성한 사실을 조사해 기록한 책. 「양주목 명선공주방 독안산 시장 절수 내 투장 허적간 성책(楊州牧明善公主房禿案山柴場折受內偸葬虛摘奸成冊)」은 1671년(현종 12) 5월 명선공주방(明善公主房) 소유의 독안산에 외부인이 몰래 묘를 조성한 일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기록한 책이다. 왕실 소유의 토지에 일반인이 불법적으로 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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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 경기도 양주목에 있는 명선공주방(明善公主房) 소유의 토지를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명선공주방 매득 전답 타량 성책(楊州牧明善公主房買得田沓打量成冊)」은 1683년(숙종 9) 5월 경기도 양주목 남면[지금의 양주시 은현면]에 있는 명선공주방 소유의 토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규 18756]. 필사본 1책[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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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숙빈방(淑嬪房) 소유의 향탄산(香炭山)을 다시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숙빈방 계하 향탄산 절수 개타량 정계 어람 성책(楊州牧淑嬪房啓下香炭山折受改打量定界御覽成冊)」은 1725년(영조 1) 11월 양주목에서 숙빈방 및 육상궁 소유의 토지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여 영조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이 책에는 백석면(白石面) 및 현내(縣內)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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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에 있는 어의궁(於義宮) 소속의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어의궁 위전답 타량 성책(楊州牧於義宮位田沓打量成冊)」은 1678년(숙종 4) 양주목에서 어의궁 소속의 위전(位田)과 위답(位畓)의 규모와 토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어의궁은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인조의 계비(繼妃)인 장렬왕후(莊烈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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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연잉군방(延礽君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연잉군방 매득 전답 타량 성책(楊州牧延礽君房買得田沓打量成冊)」은 1719년(숙종 45) 12월 연잉군방에서 양주목 백석곶면 우장리, 광석면 삼고개(三古介)[지금의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일대에 구매한 전답의 규모와 토질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연잉군[1694~1776]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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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창의궁방(彰義宮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창의궁 매득 전답 타량 어람 성책(楊州牧彰義宮買得田沓打量御覽成冊)」은 1725년(영조 1) 3월 양주목에서 창의궁방이 새로 구매한 경기도 양주목 백석면 소재의 전답 9필지를 측량한 뒤 만든 책이다. 창의궁(彰義宮)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주했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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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에 있는 어의궁(於義宮)의 율원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풍양 접동면 구궐기지 어의궁 율원 타량 어람 성책(楊州牧豊壤接洞面舊闕基址於義宮栗園打量御覽成冊)」은 1727년(영조 3) 초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어의궁 소유 율원의 규모를 정확히 측량해 영조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던 궁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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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의 환곡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목 환곡 성책(楊州牧還穀成冊)」은 1886년(고종 23) 5월 양주목에서 창고에 있던 환곡(還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환곡이란 정부와 지방 관청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걷이 뒤에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奎16110]. 필사본 1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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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용동궁(龍洞宮)이 구입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지 동십리 돌곶지 천장동 복재 용동궁 매득 전답 어람 성책(楊州地東十里乭串地天藏洞伏在龍洞宮買得田沓御覽成冊)」은 1724년(경종 4) 1월 양주목에서 용동궁이 구입한 동목(同牧) 동십리 돌곶지 천장동 산척주회팔리(山脊周回八里) 도국(都局) 내에 있는 전답을 측량한 후 국왕의 열람을 목적으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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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어등산면(於等山面)은 현재의 양주시와 동두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봉산의 옛 이름인 어등산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 태조·태종·세종·세조 등 많은 임금이 강무(講武)와 사냥을 하기 위해 양주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칠봉산을 올라 해룡산 자락에서 강무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임금이 오르는 산이라는 뜻에서 ‘어등산’이라는 이름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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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연희궁(延禧宮) 묘소 주변 등의 전답을 추가 매입해 측량한 뒤 만든 토지 대장. 「연희궁 묘소외 청룡 백호 식목처 추입 전답 타량 성책(延禧宮墓所外靑龍白虎植木處追入田沓打量成冊)」은 1765년(영조 41) 3월 양주목에서 연희궁 묘소의 내청룡(內靑龍) 근처의 전답 및 외청룡(外靑龍)·백호(白虎)의 나무 심는 곳을 단장하기 위해 추가 매입한 전답 현황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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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설치될 때 읍치도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에 새로 조성되었다. 이에 양주목의 읍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읍내면(邑內面)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읍내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각종 지리지와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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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인빈방(仁嬪房)이 구입한 동목(同牧) 소재의 제전(祭田)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인빈방 제전 양주 풍양 복재 매득 후 계하 면세 전답 개타량 성책(仁嬪房祭田楊州豊壤伏在買得後啓下免稅田沓改打量成冊)」은 1689년(숙종 15) 3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인빈방이 구입한 동목 소재 제전을 정확히 파악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책의 말미에 타량관(打量官) 및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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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靖嬪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정빈방 신 매득 전답 타량 성책(靖嬪房新買得田沓打量成冊)」은 1730년(영조 6) 3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이 새로 구입한 동목(同牧) 백석면 고령리(高嶺里)[지금의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 소재 전답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정빈(靖嬪)은 영조의 후궁이며, 진종(眞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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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진답면(陳畓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로 하사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있고 항상 농사를 짓지 않고 물이 차 있어 질퍽한 논이라는 뜻에서 진답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진답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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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천천면(泉川面)은 지금의 샘내고개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의 옛 이름인 ‘샘내’에서 유래하였다, 샘내는 샘에서 흘러나가 내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이며, 한자로는 천천(泉川)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천천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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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편찬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경기도 양주목에 해당하는 부분. 『해동지도』는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채색 필사본 지도로, 조선 전도를 비롯해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가 망라되어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태고 4709-41]. 그중 「해동지도 양주(海東地圖楊州)」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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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현내면(縣內面)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구려·백제에서 내을매(內乙買) 혹은 내이미(內爾米)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내을매현 혹은 내이미라는 땅 이름은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경덕왕 때에 이르러 사천현(沙川縣)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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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巖面)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최대 거찰인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붙여졌다. 회암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암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