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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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실시되었던 근대식 교육. 구식 한학 교육을 지양하고 근대 계몽 교육을 추구한 양주 지역의 근대 교육 기관으로는 강습소·야학·공립 보통학교 등이 있었으며, 양주 지역 각 면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일제 식민지 정책이 기만적인 문화 통치로 방향을 선회한 뒤 지방 유림들은 향교를 중심으로 하여 강습소를 설립한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고조된 민족 교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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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 있는 자연 마을. 1910년 이후 기우리로 불리고 있으며 원래는 지초라는 풀이 많이 나 지곡(芝谷)이라 불리었다. 기우리는 ‘지곡’과 같은 땅 이름으로 기우리에서 ‘기’는 지와 통하고 ‘우리’는 울[계곡]과 통한다.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 온다. 인근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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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대현(金大鉉)[1872~?]은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백석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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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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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巖)에서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양주골 백성들이 삶의 기초인 소금과 음식의 기본인 새우젓 등을 얻기 위해 임진강 나루터 사이에 있는 길목으로 많이 왕래하여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 그 길에 있는 큰 바위산에 특이한 구멍이 뚫려 있어 지나치는 백성이 나무를 꺾어 그 구멍에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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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암리(比岩里)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岩)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도로 확장 과정에서 거의 파손되었지만 옛사람들은 이 바위를 막대기로 견주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고 전한다.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광석면 사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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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 있는 수령 약 3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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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구장(區長)이었던 안종규(安鍾奎)는 양주군 백석면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안종규는 다수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3월 27일 형인 안종태(安鍾泰)와 함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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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종태(安鍾台)[1883~1920]는 서울 출신으로, 191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살면서 동생인 이장 안종규(安鍾奎)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밤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연곡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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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연곡리(蓮谷里)는 연평리(蓮坪里)와 난곡리(蘭谷里)에서 ‘연’자와 ‘곡’자를 따서 지었다. 연평리라는 땅 이름은 연못이 있는 들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래하였고, 난곡리라는 땅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에 있었던 피난말에서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연곡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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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수령 약 3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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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연곡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소규모 저수지인 연곡지(蓮谷池)의 북서쪽 경작지에 위치한다. 노아산에서 북쪽으로 발달한 주능선 말단부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평탄한 구릉이자 연곡지와 연접한 평탄한 경작지 일대이다.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조사를 실시하여 조선 시대의 유물을 확인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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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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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조선인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었다. 3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도 안종규(安鍾奎)·안종태(安鍾台)·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는데, 당시 농사를 짓던 조필선(趙弼善)도 함께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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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 전투 승전지. 해유령(蟹踰嶺) 전투(戰鬪)[게너미고개 전투]는 1592년(선조 25) 5월 중순, 북상 중인 일본군을 맞아 부원수 신각(申恪)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이 육지전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이때 신각은 전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과 함경도 남병사 이혼(李渾), 인천 부사 이시언과 함께 일본군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