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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05
한자 金華亭
이칭/별칭 금화장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3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광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철|철거 시기/일시 1950년대 - 6·25 전쟁 시 화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원위치가 아닌 폭포 아래쪽에 양주시가 복원
현 소재지 금화정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33-1지도보기
성격 정자
양식 무출목 초익공식[한식 기와 사각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양주시
관리자 양주시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금화정(金華亭)양주시 유양동 양주 관아지(楊洲官衙址)[경기도 기념물 제167호]의 동쪽, 불곡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정자이다. 금화정의 ‘금(金)’은 양주목(楊州牧)의 단합(團合)을 뜻하고, ‘화(華)’는 아름다운 백성의 뜻을 잘 수렴(收斂)한다는 의미로, 곧 번업(繁業)을 가져올 수 있는 의미를 지닌 정자이다.

금화정은 또한 양주목사가 백성들을 사랑하여 함께 즐겼다는 ‘관민동락(官民同樂)’의 사상이 배어 있는 장소로, 구양수(歐陽修)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 나온 “취하면 같이 즐거워할 수 있고 깨어나면 글을 지을 수 있느니[醉能同其樂醒能述以文]”라는 뜻을 본받아 정자 아래 바위에 ‘관민동락’이라 새기고 목민관으로서의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였다. 높은 벼슬에 이른 목사(牧使)이지만 일반 백성을 제외한 채 혼자만 소유하는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며, 백성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치자의 덕목이라고 여겼다.

[위치]

금화정은 울창한 불곡산 절경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솟아 있어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 비가 내린 뒤 폭포수가 떨어지는 광경은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정자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도봉산삼각산이 우뚝 솟아 하늘을 찌르고, 해질 무렵에는 산정에서 내리는 낙조가 난간을 타고 흐르며, 산봉우리를 감아 도는 구름은 마음의 한가로움을 더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금화정은 양주시에서 새로 건립하면서 원래의 위치가 아닌 폭포 아래쪽에 세워져 있다.

[변천]

금화정의 초창(初創)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정조어사대(御射臺)를 세우기 직전일 것으로 추측된다. 금화정에 관한 기록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71]에서부터 확인된다. 또한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정유각집(貞蕤閣集)』 중에서 금화정에 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때 나는 서울 집에 백석과 함께 있었다. 양주에서 목사를 겸직하여 병사를 점고하다가 유운옥을 만나 밤에 금화정에서 잔치를 갖다. 유운옥이 방문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다. 운옥이 양주에서 와 지은 시에 화답하다”라고 적고 있다. 금화정은 6·25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금화정은 1996년 양주시에서 다시 건립한 것이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며, 한식 기와의 사각지붕이다. 20㎝ 높이의 화강석 기단 위에 화강석 주초(柱礎)를 놓고 원주(圓柱)를 세운 무출목(無出目) 초익공식(初翼工式) 건물이다. 도리(道里)는 굴도리이며, 창방과의 사이에 소로가 끼워져 있다. 난간은 계자 난간(鷄子欄干)이며, 현판에는 ‘금화정’이라 새겨 있다.

[현황]

마을 사람들은 금화정을 ‘금화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금화정을 고쳐 부른 말이다. 새로이 복원된 금화정 옆 개울에 있는 바위에 ‘금화동문(金華洞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부근이 금화정 터였음을 알려 준다. 금화정으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알리는 금화동문을 따라 50m 정도 올라가면 금화정 터 암각문이 나오는데, ‘금화영[수]석(金華永[水]石)’과 ‘관민동락’의 명문을 음각한 암각문이 서로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금화영[수]석’ 암각문은 높이 133㎝, 너비 133㎝가량의 바위를 편평하게 다듬어서 각각 약 20㎝ 크기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관민동락’은 ‘금화영[수]석’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서 개울을 건너 맞은편 공터에 인접해 있다. 높이 70㎝, 너비 150㎝가량 되는 장방형 바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약 12㎝ 크기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산기슭의 경사진 면에는 ‘화대(花臺)’라고 하는 암각문이 있어 화계처럼 작은 관목이나 꽃을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화정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의 아름다움을 ‘유양팔경(維楊八景)’이라 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경 산성낙조(山城落照)[산성에 떨어지는 곱게 물든 저녁노을은]

제2경 기당폭포(妓堂瀑布)[기당골에 내리쏟는 우렁찬 폭포로다]

제3경 화암종성(華庵鐘聲)[백화암에 종소리는 너무도 은은한데]

제4경 선동자화(仙洞煮花)[선동의 지짐꽃도 뛰어나게 향기롭소]

제5경 금화모연(金華暮烟)[금화정 저문 연기는 미래를 다짐한 듯]

제6경 승학연류(乘鶴煙柳)[승학교 연기 낀 버들 봄빛을 자랑하네]

제7경 도봉제월(道峰齊月)[도봉산 개인 달이 밝아서 좋아하면]

제8경 수락귀운(水落歸雲)[수락산의 도는 구름 한가롭게 그지없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0.02 내용 수정 개설부분 문장 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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