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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석현리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32
한자 金海 金氏 石峴里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시대 조선/조선,현대/현대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00년대 전반 - 김해 김씨 석현리 집성촌 형성
집성촌 김해 김씨 석현리 집성촌 -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가구수 10가구
인구(남,여) 40명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촌.

[개설]

김해 김씨의 시조는 김수로(金首露)이다. 김해 김씨는 10세손인 김무력 대에 크게 번창하였고, 그의 손자가 바로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金庾信)이다. 후손들은 김수로를 시조로, 김유신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김유신의 후대에 가세가 크게 번창해 148여 개 파(派)로 나뉘었는데, 대표적인 파는 김목경(金牧卿)의 경파(京派), 그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의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의 삼현파(三賢派)이다. 2000년 기준 김해 김씨는 129만 5080가구에 412만 4934명이다. 양주 지역의 김해 김씨는 1985년 6,307명에서 2000년 9,117명으로 증가하였다.

[형성 및 변천]

김해 김씨 석현리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밀직사공파(密直司公派) 15세손인 청풍당(淸風堂) 김언방(金彦昉)[1578~1657]이다.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문장과 거문고 연주에 능하였다. 조선 인조 때 정계에서 은퇴하여 양주 장흥의 형제봉 아래에 머물면서 마을 이름을 문장동(文章洞)이라 짓고 암각문을 새겼다. 이곳은 오늘날 석현(石峴)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며 경치가 아름다워 양주 8경 가운데 하나이다. 김언방의 묘는 문장동 운영담의 서쪽, 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02[석현리 395번지]에 있다.

[현황]

김해 김씨 석현리 집성촌은 세칭 ‘양주의 강원도’라고 불리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양주 지역의 집성촌 54개 가운데 하나였으며, 당시 33가구가 있었다. 1970년대에 약 30가구였으나, 2011년 현재 10가구로 줄어들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전통 사회의 붕괴 및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급격한 이농 현상 때문에 점차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원래 집성촌이 형성된 곳의 주민 대부분은 김해 김씨였으나, 현재는 다른 성의 주민이 많다. 현재 김언방의 13세손이 살고 있다. 후손은 이밖에도 경기도 의정부시·고양시 일대에 골고루 퍼져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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