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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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用休 |
영어음역 | Yi Yonghyu |
이칭/별칭 | 경명(景命),혜환재(惠寰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조선 후기 안산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 아버지는 이침(李沈), 어머니는 초계정씨(草溪鄭氏) 정약(鄭鑰)의 딸과 한양조씨(漢陽趙氏) 조구석(趙九錫)의 딸, 처는 진주유씨(晋州柳氏) 유헌장(柳憲章)의 딸이다. 아들은 이가환(李家煥)이다. 이잠(李潛), 이익(李瀷)이 숙부이며 이맹휴(李孟休)가 종제(從弟)이다.
[활동사항]
이용휴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종제 이맹휴, 이병휴와 함께 숙부 이익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1735년(영조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이후 이용휴는 주로 향촌에 은거하면서 이광환(李匡煥), 유경종(柳慶種), 강세황(姜世晃), 조중보(趙重普), 이수봉(李壽鳳), 최인우(崔仁祐), 유중림(柳重臨), 엄경응(嚴慶膺), 허필(許佖), 임희성(任希聖), 안정복(安鼎福), 목만중(睦萬中), 채제공(蔡濟恭), 신택권(申宅權), 신광수(申光洙) 등 안산십오학사(安山十五學士)와 교류하였다. 1780년(정조 4) 아들 이가환과 입시하여 「규장각사경시(奎章閣四景詩)」를 지어 올렸다.
[학문과 사상]
이용휴는 문장에 있어 시속의 풍조를 벗어나 경전에 모법을 두고 고인지법(古人之法)에 맞는 문장을 이룩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으며 아들 이가환과 함께 ‘혜환금대지문(惠寰錦帶之文)’으로 칭송될 만큼 조선 후기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문학관에 있어서는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주자학적 권위와 구속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문인의 사명과 창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하였고 당대 30여 년을 문장가로 남인계의 문권을 잡았다. 또 집안의 전통을 따라 천문, 지리, 병농 등 실용적인 학문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 현재 필사본으로 5종의 유고가 전하는데, 『탄만집(炭+攴 曼+攴集)』을 비롯해 『혜환시초(惠寰詩鈔)』, 『혜환잡저(惠寰雜著)』, 『혜환시집(惠寰詩集)』 등이 있다. 그중 한문소설 「해서개자(海西丐子)」는 거지가 순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씨를 가졌다고 하고, 거친 들판과 옛 산협의 숨은 선비 또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으리라고 하는 내용으로 이전과는 달리 하층민의 입장에서 쓴 전(傳)이다.
기타 신광수(申光洙)가 연천군수(漣川郡守)로 나아갈 때 지은 「송신사군광수지임연천(送申使君光洙之任漣川)」 등이 있다. 유고는 아들 이가환이 신유옥사(辛酉獄事) 때 천주교도로 죽고, 이로 인해 고종 후기까지도 신원되지 못한 만큼 이가환의 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저자의 유문마저 제대로 보존되기 어려웠던 듯하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장천리에 있다가 강원도 원주시 매지리 매산묘원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