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83 |
---|---|
한자 | 任希聖 |
영어음역 | Yim Huiseong |
이칭/별칭 | 자시(子時),재간(在澗),간옹(澗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시(子時), 호는 재간(在澗)·간옹(澗翁). 아버지는 응교 임광(任珖),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부호군 홍인(洪隣)의 딸, 처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남태온(南泰溫)의 딸이다.
[활동사항]
임희성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효릉참봉(孝陵參奉)을 거쳐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과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을 지냈다. 1760년(영조 36)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고 서후(書後)를 썼다. 임희성은 관직 생활보다는 주로 문학 활동에 종사하였는데 함께 교유한 이용휴(李用休), 이광환(李匡煥), 유경종(柳慶種), 강세황(姜世晃), 조중보(趙重普), 이수봉(李壽鳳), 최인우(崔仁祐), 유중림(柳重臨), 엄경응(嚴慶膺), 허필(許佖), 안정복(安鼎福), 목만중(睦萬中), 채제공(蔡濟恭), 신택권(申宅權), 신광수(申光洙) 등과 안산십오학사(安山十五學士)로 불렸다.
[학문과 사상]
엄희성은 학문에 정진하면서 문사(文詞)보다는 실천에 힘써 잠언(箴言)과 「지일십계(至日十誡)」 등을 지어 수신의 지표로 삼고 자손을 교육하였으며 경전 연구를 통하여 주석을 달며 이이(李珥)의 설을 지지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경서차록(經書箚錄)』과 『국조상신열전(國朝相臣列傳)』, 시문집으로 『재간집(在澗集)』이 있다. 『재간집』6권 3책은 1813년 벗인 최성대(崔成大)의 손자 토목와(土木窩) 최중순(崔重純)[1753~1819]이 손수 편차하고 손자 임백희(任百禧)[1750~1823]가 옥구현에서 간행하였다.
『재간집』권1에 수록된 시 ‘삼일 동안 서울에 갔다 온 후 다시 안산의 어소에 돌아와 친척 아저씨와 집안 아우, 그리고 아들 지상과 호상·홍상 두 조카와 이광현과 같이 배를 타고 읍취헌 박은의 잠두봉 연구음을 써서 각자 한 편의 시를 짓다[入城三日又還漁所族叔師古族弟希祜趾兒好常弘常兩侄李國子光鉉同舟作行拈挹翠蠶頭聯句韻各賦]’는 안산어소와 관련된 시로써 주목된다. 안산의 벗 허필(許佖)은 임희성의 시에 대해 아름다운 서경(抒景)이나 정서보다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구(警句)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