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057 |
---|---|
한자 | 貢稅- |
영어공식명칭 | Gongsedeul |
이칭/별칭 | 공진창(貢津倉),공세곶창(貢稅串倉),아산창(牙山倉)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암 |
전구간 | 충청남도 아산시 |
---|---|
해당 지역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
성격 | 평야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들.
[명칭 유래]
공세들은 조선시대에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이 ‘공세리’인 것처럼 ‘공세들’이란 명칭도 공세창에서 유래하였다. 즉, 공세리 ‘앞들’이란 뜻이다. 공세창은 조창(漕倉), 즉 세곡(稅穀)의 수송과 보관을 위해 설치해 두었던 곳집을 말한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전기 전국에 9개의 조창이 있었는데, 그중의 한 곳이다.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공세창은 조창이 있던 장소에 따라 공진창(貢津倉), 공세곶창(貢稅串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불린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아산현·온양군·신창현을 포함하여 충청도 40개 고을의 조세를 모아두던 곳이었다.
[자연환경]
충청남도 아산시 북쪽은 경기도 안성천 하류에 접한 지역이다. 동시에 아산만을 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산만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만큼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곳이다. 그래서 아산만 연안에는 일찍부터 광활한 간석지[개펄]와 갯골이 발달해 왔으며, 나루와 포구도 많았다. 공세들이 자리한 인주면 공세리를 비롯하여 인접한 그 서쪽의 걸매리·신당리·밀두리, 그 동쪽의 모원리와 영인면 월선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연환경은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어 배후 토지에서의 농업과 함께 전면 갯벌에서의 어업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부족한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시대의 요청에 따라 인주면 내륙 쪽 간석지는 영조 연간[1762]에 간척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간석지 안쪽의 상당 부분이 개간되어 논으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바깥쪽까지 개간되어 오늘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 범위는 아산만방조제 남서쪽의 드넓은 농경지를 포함하며, 공세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관개는 냉정리의 냉정저수지에 주로 의존한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마을은 본래 입암산[213m]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 말단 산록에 집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간석지 개간으로 경관이 들판으로 변모하고, 마을이 내륙에 자리하게 되고, 과거 바닷가와 관련된 지명이 옛 기능을 상실한 채 화석처럼 육지에 남게 되었다. 공세리에는 동강마을·서강마을·새원마을·천등마을 등이 있으며, 농업 종사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4차선 지방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