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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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勝宇 |
영어공식명칭 | Lee Seungwoo |
이칭/별칭 | 치경(穉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필준 |
[정의]
조선 후기 동학농민군과 홍주의병 진압에 큰 공을 세운 문신.
[개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있으면서 초토사(招討使)에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가계]
이승우(李勝宇)[1841~191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경(穉敬)이다. 1841년(헌종 7) 태어났으며 효령대군 15세손으로 종친부직장(宗親府直長)으로 일하였다. 아버지는 품계가 통훈대부(通訓大夫)이고 음성현감을 지낸 이종청(李鍾淸)이고, 할아버지는 응교(應敎)를 역임한 이홍달(李弘達)이다.
[활동 사항]
이승우는 1870년(고종 7) 진사(進士)가 되었고, 1882년(고종 19) 증광별시(增廣別試)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문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천거를 통해 관직에 올라 있었다. 1870년 홍릉참봉(弘陵參奉)을 시작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 등을 지내다가 문과 급제 후 수찬(修撰), 고부군수,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응교, 병조참의, 동부승지(同副承旨), 사간원대사간, 홍주목사,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초토사에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홍주부관찰사(洪州府觀察使)가 되어 1895년(고종 32) 홍주의진(洪州義陣)이 일어나자 거짓으로 의진에 가담한 뒤 몰래 순검대(巡檢隊)를 끌어들여 김복한(金福漢), 이설(李偰)을 비롯한 주요 인물을 체포하여 공을 세웠다.
[상훈과 추모]
동학농민혁명 때 이승우의 공을 적어 세운 청덕비가 있으며 ‘초토사이공승우청덕비(招討使李公勝宇淸德碑)’라고 새겨져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향산리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