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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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學農民革命 |
영어공식명칭 | Donghak Peasant Revolu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기승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893년 3월 - 아산 동학도 보은 집회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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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894년 6월 - 청국 군대 아산만 백석포 상륙 |
전개 시기/일시 | 1894년 9월 - 온양 동학 농민군 봉기 |
전개 시기/일시 | 1894년 10월 - 아산 동학 농민군 아산 관아 점령 |
종결 시기/일시 | 1894년 10~11월 - 양호도순무영 아산 동학 농민군 및 온양 동학 농민군 체포, 처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94년 12월 - 동학 도접주 안교선 처형 |
발생|시작 장소 | 보은 집회 - 충청도 보은 |
종결 장소 | 안교선 처형 - 경기도 수원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안교선|김경삼|방구용|방성모|편덕진|양재건|곽완|이신교|정태영|황천일|정구영|유덕신|안완석|이구길|김일석|백원손|김기형|이호득|정군칠|이우하|권태진|엄흥록|이사벨라 비숍|호서창의소 |
[정의]
청일전쟁 시기 충청남도 온양, 신창, 아산 지역의 동학도와 주민들이 일제 침략에 저항하면서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운동.
[개설]
안교선(安敎善)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도들은 1893년(고종 30) 동학교단의 보은 집회에 참여하여 외세 침략에 저항하였다. 이어 청일전쟁으로 항일의식을 고조시킨 아산 지역민들은 동학에 입도하여 항전 의지를 다졌다. 1894년(고종 31) 9월 이후 아산의 안교선과 온양의 방구용(方九用) 등이 동학도와 주민들을 규합하여 일제에게 점령당한 관아를 습격하고 무장을 강화하였으며, 정부의 힘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부정부패를 일으키는 탐관오리와 양반 토호를 공격하였다. 안교선이 이끄는 호서창의소(湖西倡義所)는 충청남도 서부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적 배경]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동학이 포교되기 시작한 시기는 1860년대 후반이나 1870년대 초반으로 보고 있다.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로는 안교선이 대표적인데, 안교선과 순흥안씨(順興安氏) 일가인 안교일(安敎一), 안교강(安敎綱), 안교백(安敎伯), 안교상(安敎常) 등도 초기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특히 안교선은 1870년대와 1880년대 동학 경전의 편찬과 교세 확장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안교선의 초기 활동 무대는 출신지 아산과 수원, 평택, 안성, 진위 등 경기도 남부 지역이었다.
경기도 남부 지역의 경우 1862년(철종 13) 동학 조직이 이미 확인되므로 경기도 남부와 인접한 아산의 안교선 등이 1860년대 후반이나 1870년대 초반에 동학에 입도한 후 아산 지역의 지도자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2년(고종 29) 후반부터 1893년 초까지 동학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전개된 교조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이 전개될 때 아산 지역의 동학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안교선이 아산포 대접주(大接主)로 임명되었다. 아산의 안교선과 신창의 김경삼(金敬三)이 이끄는 동학교도들은 1893년 3월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일본과 서양 세력을 배척하여 의병을 일으킨다.]’를 기치로 내세운 보은 집회에 참여하였다.
1894년 6월 청일전쟁에서 일제를 몰아낸 청국 군대가 아산만 백석포에 상륙하여 두 달 정도 주둔하였는데, 청국 군대 접대를 위한 인력 동원과 비용 조달은 아산 지역민에게 직접적인 부담이 되었다. 또 7월 30일 청일 양국군의 전투가 성환과 아산 지역에서 일어나면서 아산은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아산 지역민들의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 의식이 크게 고조되었다. 청국 패잔병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으로부터 분탕질을 당한 아산 지역민들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였다. 같은 해 8월 12일 다리 공사를 하던 주민과 동학교도들이 다리를 지나가려던 일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아산 지역민들은 이 사건을 조사하러 온 일본 경찰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협하였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침략 세력을 물리치자는 의지를 갖고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경과]
1894년 9월 방구용, 방성모(方聖謀), 편덕진 등이 지도하는 온양의 동학 농민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세우고 봉기하여 마을을 다니면서 군사들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어 온양 관아의 무기도 탈취하고자 하였다. 동학 농민군 지도자 편덕진은 백정(白丁)이었으며, 동학 농민군에는 향리(鄕吏)도 참여하였다. 양반 관료 지배체제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이 동학 농민군이 되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면서 지역민을 수탈하는 탐관오리와 지방 토호들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안교선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덕산포의 동학 농민군과 합세하여 10월 5일 아산 관아를 점령하여 군수 양재건(梁在謇)을 포박하고 탐관오리를 징벌한 후, 무기고를 부수고 병기를 탈취하였다. 이튿날에는 신창의 지루동에 주둔하면서 군세를 정비하였다.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온양의 금곡에서도 활동한 기록이 있는데, 아산에서 탈취한 무기와 민간에서 거둔 농기구를 온양으로 옮겨 무장력을 강화하였다. 당시 아산에 머물고 있던 유생 이범석(李範奭)이 남긴 『경난록(經亂錄)』에 의하면,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양반 토호들로부터 재물을 탈취하는 동학 농민군을 보자 많은 주민과 청지기[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거나 시중을 들던 사람]가 동학 농민군에 합류하였으며 노비들이 동요했다고 한다. 또한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를 풀어 면천시켰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동학 농민군이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해체하였던 것이다.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10월 18일경 당진과 내포 등으로 이동하였다.
신창의 동학 농민군은 10월 25일과 26일 신창현 남상면 판방리에 주둔하였다. 김경삼, 곽완(郭玩), 이신교(李信敎), 정태영(丁泰榮) 등의 접주들이 이끌었던 신창의 동학 농민군은 천안의 동학 농민군과도 연계되어 있었으며 대포 2문을 보유하고 읍내에 창궐한다고 할 만큼 기세를 떨쳤다. 이들은 26일이나 27일경 대흥과 홍주 등으로 이동하였다.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호서창의소’임을 내세웠으며 도접주(道接主) 안교선이 호서창의소의 수령이 되었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호서창의소는 아산을 비롯하여 공주, 천안, 예산, 당진, 연기 등지에서 모인 23만 7700명의 동학 농민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렇듯 안교선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충청남도 서부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결과]
1894년 10월 말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에서 군대를 아산으로 보내 수많은 동학 농민군을 색출하여 체포하고 처형하였다. 11월 온양의 황천일(黃千一), 정구영(鄭九永), 유덕신(劉德信), 안완석(安完石), 이구길(李九吉), 김일석(金一石), 백원손(白元孫) 등은 온양읍에서, 김기형(金琦亨), 이호득(李好得), 이성오(李成五), 정군칠(鄭君七), 이우하(李禹夏), 권태진(權泰鎭), 엄흥록(嚴興祿) 등은 신창 앞길에서 처형당하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아산의 동학 농민군이 체포 투옥되었다. 안교선은 12월 24일 경기도 수원 남벌원(南筏院)에서 처형당하여 효수되었다. 신창의 이신교도 홍주전투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관군에 체포되거나 처형당한 동학 농민군의 가산도 몰수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동학 농민군의 희생과 피해는 후손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안교선의 처형 사실은 효수된 사진과 함께 일본 신문에 보도되었고, 이사벨라 비숍(I. B. Bishop)의 조선 여행기인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안교선에 의해 동학의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아산만을 끼고 있는 지정학적 특징으로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아 반침략 의식을 지닌 주민이 동학에 입도하였다. 이러한 두 요소가 결합하여 아산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충청남도 서부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지배 체제에 대한 도전을 통해 신분 해방을 촉진하였다. 또한 을미사변 이후 전개된 아산 지역의 항일 의병 활동의 디딤돌로 작용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