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15
한자 開港期
영어공식명칭 Harbor-opening Period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기승

[정의]

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설]

개항기(開港期)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면서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 가던 시기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본래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충청도 소속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개편되어 홍주부(洪州府) 소속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 8월, 또다시 지방제도 개혁이 일어나면서 행정구역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충청남도가 새로 탄생하였고, 온양군·아산군·신창군이 이에 속하게 되었다.

[개항과 사회경제적 변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아산만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에 일본은 조선에서 개항장을 물색할 때 아산을 ‘서해안 최고의 양항(良港)[배가 드나들거나 머물기에 좋은 항구]’으로 인식하여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하기도 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로 인천이 개항되자, 인천과 가까운 아산은 인천까지의 항로가 활성화되면서 개항으로 인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가 크게 나타났다.

개항기 아산 지역 통상 교역의 중심지는 둔포였다. 둔포아산만에서 안성천을 거쳐 내륙 깊숙한 곳에 형성된 포구로 경기도의 평택·성환·직산, 충청도의 아산·신창·온양·천안·풍세 등의 시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둔포는 인천을 경유한 수출입 무역의 중개 항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개항 이전만 하더라도 도매상에 해당되는 객주가 없었다. 그런데 1890년대 둔포에는 12~13호의 객주가 활발하게 상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석과 500석을 운반할 수 있는 일본 선박이 왕래하였다.

둔포 외에도 조선시대 이래 공세곶창[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아산만에서의 수운 통상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아산만 포구는 둔포와 연결되거나 곡교천 상류의 중방포와 연결되면서 인천항을 통해 해외와 교역하는 중개 항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산 지역민들은 개항 이후 자신들이 생산한 쌀, 콩, 어류, 새우, 우피[쇠가죽] 등을 판매하고 면직물, 석유, 성냥, 물감 등을 매입하여 소비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산 지역에는 근대적 개화 문물이 생활 속에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및 동학의 전파와 신분제 타파]

개항 이전부터 아산에서는 서학(西學), 즉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천주교가 중국에서 아산만을 거쳐 조선으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아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은 천주교의 초기 전래 중심지였다. 따라서 1860년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아산 지역의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1880년대 이후 서양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기독교 전파가 용인되자, 1890년대에는 내포 지역에 있는 공세리 일대[지금의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공세리성당이 설립되었다. 공세리성당은 아산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천주교 전파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부임한 파리 외방전교회의 에밀 드뷔즈(Emile Pierre Devise)[성일론(成一論)] 신부는 ‘이명래고약[성일론고약]’이라는 근대적 신약을 만들어 주민들을 치료하는 등 근대 의학을 보급하였다. 1905년 공세리성당에서는 조성보통학교를 만들어 근대적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아산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이었다.

1870년대 이후 아산 지역에 동학이 전래되면서 제국주의적 침략과 양반 관료들의 수탈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아산 지역 동학의 초기 지도자는 안교선(安敎善)과 안교선의 친지들이었다. 안교선은 아산 접주(接主)로서 아산의 동학도들을 이끌고 1890년대 교조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에 참여하였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아산의 동학 농민군은 일본 제국주의와 결탁한 탐관오리들과 양민을 수탈하는 양반토호를 공격하였다. 또한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반상(班常)[양반과 상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등 신분제적 지배 질서를 타파하고 평등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지방제도의 변화]

충청남도 아산시는 개항 직후에도 조선시대 그대로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시기 도제(道制)를 부제(府制)로 바꿀 때, 3개 군현의 구별을 없애고 모두 군으로 만들고 충청도 대신 홍주부에 속하도록 하였다. 이 제도가 반발에 부딪치자 1896년(고종 33) 다시 도제로 환원하였는데, 온양군·아산군·신창군 3개 군을 충청남도 소속으로 하였다. 1906년 수원군에 속하는 광덕면의 신흥포·신성포, 가사면의 삼도오동이 아산군으로 편입되는 등 행정구역이 증가하였으며 1914년에는 온양, 아산, 신창 등 3개 군을 폐합하여 아산군으로 개편하였다.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되어 아산군으로 분리되었으며 1995년 아산시란 이름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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