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66
한자 朴鎭和
영어공식명칭 Park Jinhwa
이칭/별칭 박태화(朴泰和),박칠동(朴七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7월 7일연표보기 - 박진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 박진화 신창면 3·1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41년 3월 4일연표보기 - 박진화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박진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성리 128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박진화(朴鎭和)[1885~1941]는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면사무소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박진화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성리 128에서 태어났으며 박태화(朴泰和)·박칠동(朴七童)으로도 불린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에 전파되자 아산군 학성면에서는 박진화를 비롯하여 정윤흥(鄭允興), 김양순(金良順), 김금복(金今福), 강순화(姜順和) 등이 주민들을 이끌고 4월 1일 밤 학성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높이 외쳤다. 이후 박진화는 이덕균(李悳均)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선도하여 면사무소·주재소·보통학교로 쳐들어가 건물을 파괴하라고 고무하였다. 또한 군중을 지휘하여 신창면사무소에 이르러 돌을 던져 문짝 두 개를 부수었고, 신창면 헌병주재소에 투석하여 문등(門燈)의 유리를 깨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박진화는 이때 붙잡혀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지만 1919년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1년 3월 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박진화의 충혼을 기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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