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05
한자 金成雨 將軍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현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 「김성우 장군」 『대천시지』에 「군드리에 상륙하여 왜적을 무찌른 김성우 장군」으로 수록
관련 지명 대천항 -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 1250 지도보기
성격 영웅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김성우|왜구
모티프 유형 영웅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서 전승되는 김성우 장군 이야기.

[개설]

「김성우 장군」에서 김성우(金成雨)[1327~1392]는 보령 땅에서 왜구를 토벌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보령에는 김성우 장군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고 있는데,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던 보령의 영웅으로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김성우 장군」은 1994년 대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대천시지』에 「군드리에 상륙하여 왜적을 무찌른 김성우 장군」으로 수록되어 있다. 군드리는 포구로, 지금의 대천항을 말한다.

[내용]

김성우 장군은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던 보령·남포 지방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온 장군이었다. 김성우는 초토사(招討使)[조선 시대 변란을 평정하기 위하여 중앙에서 임시로 보내던 벼슬아치]로 군드리에 상륙하여 성주산에 진을 치고는 황폐한 산자락에서부터 철책을 치듯이 왜구를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김성우는 산에 진을 치는 것으로 머뭇거리는 듯이 보이게 하고는 새벽녘에 적의 선박을 모두 불태우는 것으로 퇴로를 막아 버렸다. 이는 왜구를 하나도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김성우 장군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퇴로는 막혔고 점점 먹을 것이 없어지자 왜구의 저항이 극심해졌다. 그러자 김성우는 산에 있는 군사들을 모두 내려오게 하여 의평(蟻坪)에서 마지막 싸움이 벌이면서 왜군을 모조리 죽이라 명하였다. 우리 군사에게 항복해 오는 왜군조차 용서 없이 죽이라는 명이다. 이는 선량한 우리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구를 모조리 몰아낸 김성우 장군은 오랫동안 갈지 않은 전답을 다시 갈고 물을 대서 논과 밭을 일구었다. 그러자 도망갔던 정착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김성우 장군은 바닷가의 경비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남포에 진을 두어 군사를 주둔시켰으며, 그 후 10년 동안 쳐들어오는 왜구를 붙잡아 농사일을 시키다가 10여 년 만에 풀어주기도 하였다.

김성우는 한 나라가 튼튼해지는 것은 백성의 힘에 있다고 늘 말해 왔다. 그래서 수군이 연안에 머무르게 하여 왜구의 침범이 있을 때마다 그들을 무찌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김성우 장군은 왜구에게는 호랑이요, 백성에게는 울타리였다.

[모티프 분석]

김성우 장군은 고려 말 충신으로, 보령 지역의 왜구를 격퇴하여 그 공로로 보령에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보령에는 김성우의 왜구 토벌과 관련하여 지명 유래가 전승되고 있는데, 옥마봉(玉馬峰)·비도봉(飛刀峰)·군입포(軍入浦)·복병평(伏兵坪)·관암(冠巖)·의평(蟻坪)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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