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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391
한자 雲巖書院
영어의미역 Unam Private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화동 303|30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건립시기/일시 184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5칸(강당)|3칸(사우)|3칸(동재)|3칸(서재)
측면칸수 3칸(강당)|3칸(사우)|2칸(동재)|2칸(서재)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303|304지도보기
소유자 창원시
관리자 밀양박씨 종중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운암서원은 사우인 운암사(雲巖祠)가 서원으로 승격되는 일반적인 건립 과정을 거쳐 세워진 서원이다. 고려 후기 문신으로 팔은(八隱) 중 한 사람인 박익(朴翊), 그 아들인 박소(朴昭),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신 박홍정(朴弘貞), 효자인 박신윤(朴身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4월 25일 제향을 한다.

[위치]

창원시를 공단 지역과 주거 지역으로 양분하는 일직선의 창원대로에 진입하여,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북동쪽으로 꺾어들어 가서 마주치는 도로변 등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우곡(愚谷) 박신윤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가 죽은 지 4년 후인 1702년 (숙종 28) 향촌 사림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운암사를 창건하였다. 1844년(헌종 10) 운암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8년 후인 1876년에 문중에서 서당을 짓고 유계(儒契)를 이어오다 1949년부터 석채(釋菜)를 봉행하였다. 2004년 서원을 복원하고, 이때 제향 인물도 늘려 4위를 봉안하였으며, 박신윤을 위하여 사우 앞 동편에 따로 별묘를 설치하였다.

[형태]

운암서원은 외삼문·강당·내삼문·사우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강당 앞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사우 앞 동쪽과 서쪽에는 별묘와 전사청이 있어서 전학후묘의 구조를 이룬다. 사우인 경현사(敬賢祠) 3칸, 강당 5칸, 동재인 권선재(勸善齋)와 서재인 권학당(勸學堂) 각 3칸, 내삼문·외삼문 각 3칸, 별묘와 전사청 각 3칸이며, 강당의 뒤편을 개폐식으로 설계하여 날씨가 안 좋을 때는 뒷문을 열고 사당에 참배할 수 있게 하였다.

[현황]

1970년대에 국책사업으로 창원공단이 조성되면서 토지구획작업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었을 때 서원의 옛터를 보존하였다가 후에 복원하였다. 3종의 문집을 포함한 여러 문서가 유물로 보존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유물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취지에서 서원을 창원시 소유로 하여 유지,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운암서원은 서원 건립이 성행하던 조선 후기 숙종 때에 창건되었다는 점에서는 당시의 일반적 경향을 보여주지만, 제향 인물인 박신윤 사후 짧은 시일에 완성되었으며, 향촌 사림들의 상소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는 지역적 여망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창원은 도호부의 규모였음에도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서원이 적었는데, 도호부 관아를 지금의 마산에서 창원으로 옮기고 나서 유풍 진작에 힘쓴 것으로 여겨진다. 서원이 지방자치단체인 창원시의 소유라는 점도 특이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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