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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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貴山洞洞祭 |
영어의미역 | Gwisan-dong Village Tutelary Festival |
이칭/별칭 | 산제,산신제,당산제,조산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 |
집필자 | 정정헌 |
성격 | 민간신앙|마을 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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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1월 1일(음력) |
의례장소 | 봉화산 중턱의 제당 |
신당/신체 | 산제당(돌탑)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봉화산 중턱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귀산동 동제는 마을의 주산인 봉화산 중턱에 마련된 제단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자시에 석교마을과 귀산본동이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산제·산신제·당산제·조산 등으로도 부른다.
[연원 및 변천]
귀산동 동제는 예전에는 마을의 작은 산인 당산에서는 당산제를, 큰 산에서는 산제를 지내던 마을 공동의 제사였다. 귀산동 산제는 임진왜란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구전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재 봉화산 중턱에 마련된 제단에서 귀산본동과 석교리가 공동으로 동제를 지내는데, 10년 전부터는 인근의 대한불교 원효종 소속의 불정사라는 사찰에 맡겨 지내고 있다. 이렇게 한 연유는 무엇보다 제관을 선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봉화산 중턱에 있는 제단은 원형의 돌탑으로 조성되어 있다. 돌탑 지름은 정확하게 3m이고, 높이 약 300㎝(9자 9치)이다. 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자연동자석이 있으며 정(正) 동서남북에 구멍이 있어 서로 빛이 통하게 조성되어 있다.
[절차]
제물은 소머리와 과일 7가지, 해물을 사용한다. 산에서 지내기 때문에 해물을 많이 사용한다. 해삼·문어·조기·돔 등 각종 어물이 많다. 원래 물에서 지낼 때는 돼지나 소와 같은 동물을 제수로 사용하고, 산에서 지낼 때는 물에 사는 생선을 제물로 사용한다. 제물 중에 소머리와 해삼을 사용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또 고무신 세 켤레, 버선과 양말, 옷을 올려놓는데 고무신은 남자용 한 켤레, 여자용 두 켤레가 올려진다. 이는 1명의 남신과 2명의 여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려 3명에 의해 진행되는 산신제 절차는 강신→「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읊는 진언→「신중경」→「산신경」→축원(문)→참신→삽시정저(揷匙正著)→철상→음복→소머리를 땅에 묻는 퇴공 순으로 진행된다. 마을 대표자 3~5명이 참관하며, 산신제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마을 사람들도 3일 동안 정성을 드리며, 궂은 일이 있는 사람은 올라가지 않는다. 제의 절차는 불교식과 유교식이 섞여 있으며, 불교의 독경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축문]
마을에서 동제를 사찰에 맡겨 진행하기 때문에 축문은 없다.
[현황]
귀산본동과 석교마을의 생활 기반인 논밭은 동일한 곳이다. 이런 연유로 귀산동 동제에 소요되는 제물과 경비는 두 마을에서 공동으로 충당한다.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이 제관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불정사 승려가 동제를 주관하기 때문에 규모면에서 매우 간소화되었다. 마을사람들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대표자 몇 분만 참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마을사람 중에는 동제 날짜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니 동제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다시 말하면 동제를 통해서 마을사람의 화합을 도모하고, 풍농을 기원하는 축제의 기능은 사라지고 외형만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히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축소된 동제 양식만이 강조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