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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군 통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63
한자 天安市郡統合
이칭/별칭 천안시 통합,천안통합,시군통합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1년 - 지방자치제 부활
발단 시기/일시 1994년 4월 25일 - 천안시군 통합 주민 투표 실시
전개 시기/일시 1995년 3월 - 천안시군 통합에 관한 의견 조사 재실시
종결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연표보기 - 천안시군 통합으로 통합 천안시 출범
성격 행정 구역 통합

[정의]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와 천안군의 행정 구역을 통합한 사건.

[개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광무 10) 칙령 제49호로 천안 관내였던 신종면을 예산군으로, 모산·돈의·덕흥의 3개 면을 아산군으로, 우평을 면천군으로 넘겨 11개 면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에는 목천군·직산군을 합하여 천안군이라 불렀고, 1963년에는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승격하고 나머지 지역은 천원군이 됨으로써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 천원군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환원]하였으며, 1995년 천안군과 천안시가 통합되어 도농 복합형 도시인 천안시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현재의 행정 단위는 1896년에 기본적인 틀이 짜여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시세의 확장으로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던 천안시에서 행정 구역 개편 문제가 먼저 일기 시작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도권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속했던 천안군도 급속히 발전하면서 소규모 행정 단위로는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면서 토지 이용 계획의 효율성을 꾀하려면 시군 통합이 절실하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때에 지방 자치제가 부활되면서 오랜 현안이었지만 그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시군 행정 구역 간 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행정 구역을 광역화함으로 행정 경비도 줄이고 능률도 올리는, 도농의 연계적 발전을 모색하자는 차원에서 문화적 환경이 같은 천안시와 천안군의 행정 구역 통합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경과]

1994년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대하여 주민 의사를 물어 본 결과, 천안시민은 압도적으로 통합에 찬성하였으나 천안군민은 반대 의사가 많아 한 차례 부결되었다. 당시 군민들은 통합이 되면 혐오 시설이 군 지역에 치중하여 설치되고 지방세가 과다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반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1995년 1월 풍세면광덕면 주민이 통합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다시 민의를 수렴하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정부는 다시 한 번 통합 의견을 수렴해 주기를 원하는 지역은 또다시 주민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천안시군도 그해 3월 의견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군민의 압도적 찬성으로 시군 분리 32년 만에 다시 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천안시는 이미 찬성 의견이 대부분이었기에 재투표를 생략하고 천안군민의 의견만 물었다.

[결과]

천안시군은 통합 기획단을 조직하고 통합 사무를 진행함으로써 1995년 5월 10일 천안시군 통합을 선언하고 통합 천안시의 사무를 시작하였다.

[의의와 평가]

통합이 되면서 인구 33만의 중간 규모 도시로 면모를 새로이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역은 서울특별시 보다 넓은 행정 구역을 보유하게 되었다. 도시 지역인 옛 천안시 지역을 에워싸는 전원 지대와 공업 지역이 알맞게 분포되어 성장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도시 환경이 마련되었다. 2012년 현재 인구 60만의 대도시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중부권의 핵심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참고문헌]
  • 『천안시지』(천안시지 편찬 위원회, 1997)
  • 천안시(http://www.cheon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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