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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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祠宇 |
이칭/별칭 | 사당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제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조선 시대에 선현을 추모하고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제향을 드리던 공간.
[개설]
사우(祠宇)는 조선 시대에 선현(先賢)을 제사하기 위해 건립된 제향처(祭享處)이다. 사우는 유현이나 충절인의 가향(家鄕), 거주지, 근무지, 유배지, 순절지[전승지], 타계지 등에 세워졌다. 사우의 건물 구조는 대개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강당(講堂) 등의 강학 시설이 더해질 경우 서원(書院)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사우가 순수하게 선현에 대한 제사가 목적이라면 서원은 제사와 함께 학문 연구와 강론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다.
사우는 문중의 후손들에 의해 대상 인물의 묘 인근에 건립되거나, 지역 사림들이 뜻을 모아 유허지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서원 사우를 막론하고 만인의 사표가 될 만한 명현을 제향하였거나, 전통이 깊어 지역적 영향력이 큰 곳은 사액(賜額)을 내려 장려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국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서원과 사우가 우후죽순처럼 남설되고 많은 사우가 서원으로 탈바꿈하자 정책적으로 감독하여 억제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현재의 학자들은 서원과 사우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천안의 사우]
천안 지역에서 문헌에서 확인되는 사우는 2개가 있다. 모두 조선 시대 행정 구역상 천안군에 속하는 양현사(兩賢祠)와 육현사(六賢祠)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호서읍지와 1863년(철종 14)에 간행된 천안의 읍지인 『영성지(寧城誌)』에서만 확인이 된다. 양현사와 육현사 모두 강학을 하던 서사(書社)에서 사우로 변화된 공통점이 있다. 양현사는 검계서사, 육현사는 용계서사였던 곳을 훗날 후손과 후학들이 유현 인물을 제향하기 위하여 사우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두 사우는 1871년(고종 8) 흥선 대원군이 서원 정리를 할 때 훼철되었다가 현대에 들어와 복원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건립된 사우는 다수가 현존하고 있다. 현대의 사우는 주로 문중에서 주도적으로 건립하며, 지역 출신의 유명 인물의 사우 건립에는 천안시와 충청남도의 유림이 동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