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도』 「청송도호부·진보현 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536
한자 嶺南地圖靑松都護府眞寶縣地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영남지도』 보물 제1585호로 지정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소장처 영남대학교 박물관 - 경북 경산시 대학로 280 영남대학교 박물관[대동 214-1]
성격 고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18세기에 제작된『영남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진보현의 지도.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는 경상도의 71개 고을의 지도가 모두 수록되어 있는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집으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대와 작자는 알 수 없다. 1리[약 0.4㎞] 방안 위에 그려진 방안지도로써 가장 축척이 큰 도별 군현 지도집이다. 『영남지도』는 현재 실존하는 다른 도의 군현 지도집과 비교할 때 보존 상태나 지질, 정돈 등이 가장 양호하다. 경주, 거창, 거제, 고령, 창원, 경산 등 당시 경상도 고을의 71곳 군현의 지도가 한 장씩 그러져 있고, 제2책에는 경주가, 제4책에는 남해, 개령, 의령, 안음이, 제5책에는 창원이, 제6책에는 하양 등이 그려져 있다.

본 지도집의 도폭 뒷면에는 비변사(備邊司)의 도장 낙인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하며 이용했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지도의 항목과 내용의 구성으로는 읍치, 산천, 영애(嶺隘), 면, 봉수, 향교, 서원, 사찰, 창고, 역원, 누정, 사직단과 여단, 도로 등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위치와 이름을 주기(注記)하였다. 특히 도로는 1리 방안 지도의 특성인 직선으로 그렸다. 대로(大路)는 적색으로, 중로(中路)는 황색으로, 소로(小路)는 청색선으로 표시하였고, 봉수로(烽燧路)는 주황색으로 표시하였다.

주기에는 민호, 전결, 원회미(元會米)와 경도(京都)로부터의 거리, 사방 강계, 면, 향교, 서원, 사당의 이름 및 위치와 사액 여부, 창고와 역, 절의 위치, 산천의 이름과 위치, 진(鎭) 등 해당 지역의 총체적인 자료를 표기하였다. 『영남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85호로 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1745년(영조 21)에서 1760년(영조 36)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몇몇 군현지도에서 비변사인(備邊司印)이 찍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비변사에서 영남지방의 행정 실무 파악과 함께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영남지도』「청송도호부·진보현 지도」청송도호부진보현에서 직접 제작한 다음 비변사에 올린 것으로 보여진다.

[형태]

『영남지도』는 경상도 71개 군현의 지도가 그려진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모두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송도호부진보현은 각각 2권과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크기는 청송도호부가 세로 106.5㎝, 가로 80.5㎝이고, 진보현은 세로 108㎝, 가로 89㎝ 이다. 지도 상단에는 청송도호부진보현의 지지(地誌)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영남지도』는 1리 방안의 축척 지도로 대개 8.3㎜~8.5㎜ 크기의 방안 좌표 위에 그렸다. 청송도호부 지도는 2권에 있는데, 읍치는 방광산(放光山) 아래의 적색 바탕에 청색 윤곽선을 가진 직사각형 안에 읍치(邑治)라고 명기하였고, 그 좌우로 향교와 수고정(秀孤亭)이 모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산맥은 ‘∧’ 형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북쪽에는 방광산중대산(中臺山)이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월외산(月外山), 월명산(月明山), 주방산(周房山)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경주로 넘어가는 유현험액(柳峴險阨)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에는 안동과 경계를 삼고 있는 자일산(紫日山)이 위치하고 있다. 각 면(面)은 황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을 한 직사각형 모형으로 표시하여 각 해당 위치에 그려 넣었다.

도로는 읍치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대로(大路)는 적색 실선으로 표시하여 안동과 진보로 연결되어 있고, 중로(中路)는 황색으로 표시하여 남쪽으로는 안덕고현(安德古縣)을 지나 각각 의성과 신녕으로 연결되며, 또 청운역(靑雲驛)을 경유하여 자채산(紫彩山)을 지나 유현험액을 넘어 경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면과 면이 연결되는 소로(小路)는 청색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현내면에는 송학서원(松鶴書院)이, 현동면(縣東面)에는 병암서원(屛巖書院)이 각각 모형으로 그려져 있으며, 읍창(邑倉), 남창(南倉), 서창(西倉)도 모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사찰과 누정, 기암(奇巖) 등을 모형으로 그려 넣었다. 서울에서 떨어진 거리는 590리[약 232㎞]이고 청송도호부를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영덕(盈德)과 경계인데 거리는 20리[약 8㎞]이다. 서쪽으로는 안동과 접하며 거리는 20리이고 남쪽은 신녕(新寧)과 접하며 8리[약 3.2㎞]이고, 북쪽은 진보와 경계를 삼고 거리는 6리[약 2.4㎞]이다. 이 밖에도 읍치를 기준으로 해서 창고와 역, 면과의 거리를 표기하였다.

진보현 지도는 1권에 있다. 읍치는 도림산(道林山) 아래의 분홍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을 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표시하였고, 진산은 읍치 남쪽에 위치한 남각산(南角山)이다. 읍치 바로 위에 옥류정(玉流亭)을 묘사하였고 향교와 제단도 그려져 있다. 산줄기는 ‘∧’ 형 모양으로 그렸는데, 인접 군현과 경계를 삼고 있는 산명(山名)은 기록하지 않고, 진보현 내에 소재하고 있는 남각산, 비봉산(飛鳳山) 등만 명기하였다.

대로는 적색 실선으로 그렸는데, 읍치를 중심으로 길이 형성되어 있다. 대로의 서쪽에는 성천(聲川)을 건너 안동과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동현(銅峴)을 지나 남면(南面)을 거쳐 청송과 이어져 있고, 동쪽은 상리면(上里面)을 경유하고 임물령(林勿嶺)을 통과하면 영덕으로 이어져 있다. 북쪽에는 성황(城皇)을 지나 삼두등원(三豆等院)으로 가면 영덕으로 연결되고, 북창(北倉)을 지나 길가마치(吉可馬峙)를 넘으면 영양과 연결된다. 중로는 제단과 북창(北倉), 봉람서원(鳳覽書院)으로 연결되고, 소로는 각 면과 연결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암절벽인 문암(文巖)과 구암(究巖)이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고, 사찰과 암자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과 진보현과의 거리는 616리[약 242㎞]이다. 진보현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영덕과 경계인데 거리가 30리[약 12㎞]이고, 남쪽은 청송으로 경계이며 거리는 25리[약 10㎞]이다. 또 서쪽으로는 안동을 경계로 하여 거리는 20리이고, 북쪽으로는 영양(英陽)과 경계이며 거리는 20리이다. 그 외에 읍치를 기준으로 진보현에 소속된 창고와 역, 면과의 거리를 표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군현도 중에서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 시기 청송 지역의 실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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