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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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亭里義城金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아랫여듬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약 40가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있는 의성 김씨 도곡공파 집성촌.
[개설]
월정리 의성김씨 집성촌은 월정리 아랫여듬마을에 있는 의성김씨 세거지이다. 의성김씨는 경상북도 의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김석(金錫)은 신라 경순왕과 후비 낙랑공주 왕씨 소생의 차남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삼아 이어오고 있다. 청송의 의성김씨 입향조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으로, 김한경은 1456년(세조 2) 개성 풍덕에서 태어나 1506년(중종 원년) 공신에 임명되었다. 중종반정 후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낀 김한경은 현서면 도동으로 거처를 옮겨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현서면 모계리, 월정리, 도리 등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명칭 유래]
정월 보름에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서 달맞이를 하였다 하여 월정리(月亭里)가 되었다고 하며 달정이라고도 한다. 아랫여듬마을은 여듬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여암마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월정리의 본 마을인 달정은 약 800년 전, 경주김씨 김기순(金基順)이 개척했다고 한다. 월정리 아랫여듬마을의 입향조는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도곡 김한경의 증손 김성진(金城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진은 동생인 성원과 성달을 의진에 가담시켜 왜적과 맞서 싸우도록 하고, 자신은 노모를 모시고 피난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김성진은 월정리에 정착하여 침류정(枕流亭)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김성진의 후손은 월정리 아랫여듬마을에서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월정리의 의성김씨 가구 수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42가구였고, 1992년에는 35가구였으며, 현재는 약 4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자연환경]
월정리는 대정산과 어봉산 사이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북으로는 모계리, 남으로는 사촌리와 닿아 있다. 아랫여듬마을은 윗여듬마을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어봉산, 남쪽으로는 청송로와 길안천의 지류를 두고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아랫여듬마을의 가구 수는 약 100호이며, 그중 약 40호가 의성김씨이다. 아랫여듬마을에서 특별한 문중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매년 10월이 되면 이웃한 도리 추원당(追遠堂)에서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도곡 김한경의 제를 지낸다.
월정리의 의성김씨 관련 유적들은 침류정과 오월헌(梧月軒)이 남아 있다. 침류정은 두와 김성진이 학문을 가르치던 누각 형태의 정자로, 그 앞에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08호인 청송침류정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오월헌은 서당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1868년 2차 서원 철폐령 때 철거되고, 지금의 건물은 파천면 세덕사(世德祠)의 헌 자재를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