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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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平別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35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윤유석 |
건립 시기/일시 | 1888년 2월 7일 - 가평별묘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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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5년 - 가평별묘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6월 17일 - 가평별묘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10호 지정 |
현 소재지 | 가평별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355 |
성격 | 사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문화재 지정 번호 |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10호 |
[정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남도진의 사당.
[개설]
가평별묘는 조선 후기 학자 남도진(南道振)[1674~1735]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남도진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자는 중옥(仲玉), 호는 농환재(弄丸齋)이다. 남도진은 벼슬을 마다하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아래 은거하다 일생을 마쳤다. 문집으로 『계몽차기(啓蒙箚記)』, 『예서차기(禮書箚記)』, 『주역차기(周易箚記)』, 『고람역(考覽易)』 등이 있으며, 은거하던 용문산 낙은암(樂隱岩) 근처의 경치를 노래한 「낙은별곡(樂隱別曲)」을 남기기도 하였다.
1735년(영조 11) 사망한 뒤 문중 선산이 있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묻혔다. 1974년에는 설악면 선촌리 장석마을에 있는 경현단에 배향되었다.
[내용]
가평별묘는 남도진의 6대손으로 개항기 관료였던 남정철(南廷哲)[1840~1916]이 1888년(고종 25) 2월 7일 건립하였다. 남도진의 문집과 영정을 모시고 매년 7월 7일 제향을 드렸다. 영정은 남도진이 54세가 되던 1728년(영조 4)에 장남 남득관(南得寬)[1697~1733]이 당대의 이름난 화가인 함세휘(咸世輝)에게 청해 그린 그림으로, 남도진이 직접 자찬(自贊)을 써 넣었다.
[위치]
가평별묘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244에 있다. 가평별묘 앞에는 1450년에 식재된 보호수 방일리 느티나무가 있다. 방일리는 이천리와 함께 의령 남씨 동강공파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형태]
가평별묘는 가로 5.2m, 세로 4.6m의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이고, ‘농환재(弄丸齋)’라고 쓰인 판액이 걸려 있다.
[현황]
가평별묘는 1985년 봄에 후손들이 전통 가옥으로 중건하였으며, 1998년 6월 17일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가평별묘에 있던 영정과 문집은 현재 후손들이 따로 보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