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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74
한자 校里
영어음역 Gy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24㎢
가구수 254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468명(남자 244명, 여자 224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 시대 지례향교(知禮鄕校)가 세워지면서부터 교동(校洞), 교촌(校村), 향교마 등으로 불리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리·범박골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교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교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교1리·교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면 교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앞으로 감천이 흐르고 뒤로는 구산(龜山)이 마을을 호위하듯이 둘러싸고 있다.

[현황]

교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2.2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54세대에 468명(남자 244명, 여자 22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교1리·교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남평 문씨 집성촌이다. 공공기관으로 지례면사무소, 교육 기관으로 지례초등학교·지례중학교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 지례현아 터, 지례향교, 양효위사 윤은보 서즐 정려각이 있다. 지금의 지례면사무소 일대에 있었던 지례현아 동헌을 수경당(垂慶堂)이라 하였고, 현감 밑에 좌수 한 명, 별감 두 명, 군관 30명, 인리 38명, 지인 20명, 사령 19명, 관노 20명, 관비 25명이 있었다. 지례현감 이채(李采)[1745~1820]는 상권의 중심인 교리를 수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례방천을 축조할 때 상부리교리 중간에 보조제방인 세뚝을 추가로 쌓기도 하였다.

지례향교는 1426년(세종 8) 정옹(鄭雍)이 현감으로 있을 때 창건하였고, 1485년(성종 16) 김수문이 현감으로 있을 때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774년(영조 50)에 사반루(思泮樓)를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지례향교가 소실되었을 때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현의 위패를 구해낸 호성위도(護聖衛道)의 공적을 두고 의성 김씨은진 송씨 집안에서 분쟁이 일기도 하였다.

윤은보(尹殷保)서즐(徐騭)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후학을 양성하던 스승 장지도(張志道)를 지극 정성으로 섬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서즐은 스승의 기일에 폭설로 길이 막혀 제물을 구하지 못해 통곡하자 효성에 탄복한 호랑이가 노루를 물어다 주어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는 정성고개의 주인공이다.

자연 마을로는 교리·온평(溫坪)·범박골 등이 있다. 온평은 국도 3호선 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조선 고종 때 정선 전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 지세가 평온하고 따뜻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촌, 옛날 마을 규모가 컸으므로 대촌(大村)이라고도 하였다.

범박골은 옛날 마을 뒷산 큰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하여 범바위골이라 한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 이름이다. 마을 주민들은 호랑이가 출몰했던 이 바위를 정성으로 섬겼는데 그 덕택인지 마을에 큰 부자가 나오고 자손들이 번창해 부평동(富坪洞)이라고도 하였다. 구 도로를 중심으로 지례향교 맞은편 일대 장터는 오래전부터 지례면, 부항면, 구성면, 증산면, 대덕면 상권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지례장이 섰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지금도 마을회관 일대에는 큰 장이 섰던 공터와 점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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