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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302
한자 釣龍里
영어음역 Jory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7㎢
가구수 136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49명(남자 118명, 여자 13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앞 봉곡천에 용을 낚았다는 용구(龍口)라는 웅덩이가 있어 조룡(釣龍)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조룡·쌍괴(雙槐)·양지(陽地)·봉곡·조현이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조룡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조룡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조룡1리·조룡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오지로 조룡골에 마을이 흩어져 있고 마을 앞으로 조룡천이 흐른다. 봉곡천 변에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조룡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9.7㎢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36세대에 249명(남자 118명, 여자 1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쪽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북쪽으로 부항면 어전리, 남쪽으로 가례리와 이웃하고 있다. 조룡1리·조룡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천의 대표적인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문화 유적으로 섬계서원, 봉곡사(鳳谷寺), 남평 문씨 재실인 감모재(感慕齋)가 있다. 섬계서원백촌 김문기[1399-1456]와 그 아들 김현석,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그 행적이 오른 장지도·윤은보·서즐을 배향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9년 복원되었다. 뒤뜰에는 천연기념물 제300호로 지정된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가 있다.

봉곡사는 644년(선덕여왕 13) 자장대사가 창건하고 922년(태조 5) 도선국사가 중창한 고찰이다. 봉곡사 창건과 관련해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온다. 자장대사가 처음 절터를 잡고 공사를 시작한 곳은 비봉산(飛鳳山)[일명 동안산] 너머 부항면 사등리 갯절[일명 단산]이었는데 기이한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계속 산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 보니 새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는 곳이 실로 명당인지라 절을 옮겨 짓고 새가 날아간 골짜기에 지은 절이므로 절 이름을 봉곡사라 하고,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넘어간 산은 비봉산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로는 섬실[일명 섬계(剡溪)]·양지마·음지마·새재 등이 있다. 섬실은 조선 세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김문기의 후손 김경욱(金慶郁)이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김녕 김씨 충의공파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김문기김녕 김씨 9세손으로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工曹判書兼三軍都鎭撫)로 있을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고 병력 동원을 맡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아들 김현석과 함께 순절하였다.

1791년(정조 15) 정조가 홍문관에 명하여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찬할 때 민신·조극관 등과 함께 삼중신(三重臣)으로 선정되었고, 1802년(순조 2) 섬계서원에 배향되었다.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는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결정하고 김문기의 가묘를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묘에 추봉하였다.

원조룡 앞산 당그래봉은 산 모양이 곡식을 그러모으는 당그래[고무래의 사투리]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당그래봉 나뭇잎이 무성하면 마을에 풍년이 들고 잎이 빈약하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맞은편 음지마 뒤 골짜기인 머릿골이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전설이 전한다. 옛날 어느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7일 만에 아이가 벽을 기어오르는 등 기행을 많이 하자 아이가 장차 큰일을 저지를까 걱정되어 죽여 버렸는데, 다음 날 말 한 마리가 찾아와 아이의 시신을 보곤 슬피 울면서 시신을 물고 가다 머리를 이 골짜기에 묻어 주고 갔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새재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로 이어지는 고개인 서낭등재가 지대가 높아 새가 넘나드는 고개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조현(鳥峴)이라고도 한다. 윗새재[일명 상조현(上鳥峴)]와 아랫새재[일명 하조현(下鳥峴)]로 나누어져 있다. 새재로 들어가는 길옆에는 ‘첨망대(瞻望坮)’라 새긴 큰 바위가 서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9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1) 조룡·쌍훼(雙槐)·양지(陽地)·봉곡·조현이 통합되어 ->조룡·쌍괴(雙槐)·양지(陽地)·봉곡·조현이 통합되어 2)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로 있을 때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工曹判書兼三軍都鎭撫)로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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