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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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時代 |
영어음역 | Goryeo Sidae |
영어의미역 | Goryeo Period |
이칭/별칭 | 금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한충희 |
[정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개설]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오늘날의 김천시(金泉市)는 1995년 1월 전국적인 지방 행정의 개편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金陵郡)이 통합되면서 확정되었다. 고려시대의 현 김천 지역에는 처음에는 속현(屬縣)인 김산현(金山縣)·지례현(知禮縣)·어모현(禦侮縣)·개령현(開寧縣)이 있었고, 뒤에 김산현·지례현·개령현이 감무관(監務官)으로 승격[어모현은 속현]되었다가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행정 구역의 변천]
고려가 개국될 때 김천 지역에는 통일 신라 때의 지방 제도가 계승되면서 개령현[현 개령면과 아포면·감문면·농소면·남면 일대]과 개령현 속현인 김산현[옛 김천시와 조마면·구성면·봉산면·농소면 일대]·지례현[현 지례면과 대덕면·부항면·증산면 일대]·어모현[현 어모면 일대]이 있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적인 지방 제도의 정비에 따라 개령현은 주현에서 속현인 어모현과 함께 상주(尙州)[현 상주시] 속현이 되었고, 김산현과 지례현은 경산부(京山府)[조선의 성주목(星州牧), 현재는 성주군] 속현이 되었다. 고려 후기에 전국적으로 속현에 감무관을 파견함에 따라 명종 때에는 개령현이 감무관으로 승격되고 어모현을 속현으로 거느렸으며, 1390(공양왕 2)에 김산현과 지례현이 각각 감무관으로 승격하였다. 고려 말의 이 제도가 조선의 개창과 함께 그대로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역참제]
김천 지역은 경상도의 서북에 위치하고, 그 인근의 지세와 관련되어 남북 변경과 개경을 군사·행정적으로 연결하는 역참제(驛站制)의 한 축이 되었다. 시역의 중앙에 위치한 김천역은 22역도(驛道)가 된 경산부도(京山府道)에 소속되었지만 김산현 내에 소재한 문산역(文山驛)·추풍역(秋豊驛), 개령현에 소재한 부상역(扶桑驛)·양천역(楊川驛), 지례현에 소재한 두의곡역(頭衣谷驛)·작내역(作乃驛)과 함께 경상도 중남부 지역과 충청도 남동부를 연결하는 거점역이 되었다. 이를 토대로 조선 시대에는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으로 승격되면서 주변의 20여 역을 관할하는 핵심 도역이 되었다.
[면리·부곡제]
고려시대의 김천 지역에는 면리(面里)·부곡(部曲)제를 통한 지방 통치, 공물 징수와 관련되어 개국 이래로 20여 부곡·향(鄕)·소(所)·처(處)가 편제되어 고려 말까지 운영되다가 새로운 면리나 인근의 면리에 통합되면서 소멸되었다. 김산현에는 부곡 5[계곡·신가량·조마·어미·금화]·향 1[영명]·소 2[황금·수다곡]·처 1[파매], 개령현에는 부곡 6[달오촌·무차·다칠촌·하활곡·상오지·금물도], 지례현에는 부곡 3[두의곡·월이곡·사등량] 이상이 있었다.
[기타]
1383년 7월[음력] 왜구가 대구, 경산, 선산, 안동을 거쳐 지례, 김산 등까지 쳐들어 왔다.
[의의와 평가]
김천 시역은 고려시대에는 4개 현으로 분립되어 있었다. 4개 현 모두 고려 전기에는 고대와 달리 지역적인 중요성이 약해지면서 인근 주현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후기·말기에 전국적인 감무관의 파견과 함께 독립된 군현이 되었다. 반면에 지세와 관련되어 다수의 역이 설치되면서 조선 초기 도찰방역으로 승격되고, 오늘날 교통의 요지로 발전되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