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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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曺氏 |
영어음역 | Changnyeong Jossi |
영어의미역 | Changnyeo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
집필자 | 송기동 |
입향 | 조선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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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상남도 창녕군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
성씨 시조 | 조계롱 |
입향 시조 | 조심 |
[정의]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심(曺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창녕조씨의 시조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인 조계룡이며, 중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의 사위인 조겸(曺謙)이다. 시조인 조계룡이 창녕 화왕산(火旺山)의 용지(龍池)에서 잉태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본관을 창녕으로 삼았다고 한다. 김천 지역의 창녕 조씨는 6세(世) 좌찬성 조경수(曺敬修)로부터 분파된 찬성공파의 후손이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찬성공파에서는 16세로 추정하는 조송무(曺松茂)를 1세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
찬성공파 시조인 조경수는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단행해 창왕을 옹립한 공으로 좌시중에 오른 조민수(曺敏修)의 동생으로 1389년(고려 창왕)에 조민수가 조준(趙浚)의 탄핵으로 창녕으로 유배되면서 정권으로부터 소외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개경에 살면서 명문가를 형성하고 있던 동생 조경수의 3남인 조심이 벼슬을 버리고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로 낙향했다.
창녕조씨가 김천 지역에 입향한 이후 두드러진 인물은 8세 조계문(曺繼門)의 아들 조위(曺偉)·조전(曺佺)·조신(曺伸)이다. 이들 3형제는 조문삼문장(曺門三文章)으로 불렸다. 15세 조시영(曺始永)은 한말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고 17세 조응방(曺應邦)은 순조 때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현황]
창녕조씨 찬성공파 조경수의 3남인 조심이 개경에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로 입향한 이래 인의리·신리·입석리에 후손들이 집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김천시사』에 따르면 봉산면 인의리와 신리에 53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김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창녕조씨는 총 402가구에 1,344명이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창녕조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 조위의 출생지에 건립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1호인 김천 율수재(金泉聿修齋)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2호인 정부인 문화 류씨 묘지명 지석이 대표적이다. 또한 효자 조응방 정려각과 문중 재실인 마암재(馬岩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