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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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碩龜 |
영어음역 | Gang Seokgu |
이칭/별칭 | 낙서(洛瑞),이중(而仲),학암(鶴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우 |
출생 | 17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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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768년 |
활동 | 1789년 |
몰년 | 1810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
사당|배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대표 관직 | 의금부동지사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낙서(洛瑞)·이중(而仲), 호는 학암(鶴巖). 은열공의 20세손, 학사공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여호(姜汝㦿)이고, 할아버지는 강필형(姜必亨)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강진환(姜震煥)이다. 외할아버지는 장만원(張萬元)이다.
[활동 사항]
강석구(姜碩龜)[1726~1810]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기를]에서 태어났다. 1768년(영조 44)에 식년시 을과에 합격하였다. 사헌부정언으로 재직하던 1786년(정조 10) 홍국영(洪國榮)과 내통한 이담(李潭)에게 역적의 법을 소급해 시행할 것을 청하였고, 이해 김천 향저에 머물면서 경상감사 홍억(洪檍)이 유생들에게 지나친 형률을 적용하자 탄핵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정조로부터 영남 지방의 추로지향(鄒魯之鄕)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강석구는 대간직에서 체직되었다.
1789년(정조 13)부터 부사과와 승정원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796년(정조 20)에는 왕에게 바른 학문을 밝혀 풍속을 두텁게 하고, 과거의 폐단을 혁신하여 선비들의 습속을 바르게 하는 등 10개 조목의 시정안을 올려 비답을 들었다. 이후 한성우윤, 이조참의, 의금부동지사를 역임하였다. 강석구는 대대로 양반의 가문의 전통을 이었으며, 소박한 살림을 즐기는 청백의 지조를 이루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학암집(鶴巖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위치한 자동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