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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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得培 |
영어음역 | Jeong Yunhong |
이칭/별칭 | 공달,송재(松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영호 |
출생 | 15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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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 1635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하빈(河濱)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공달, 호는 송재(松齋). 이선동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광진이다. 동생으로 이득지, 이득봉이 있다. 이득지는 자는 여달로 효성이 높았으며 벼슬은 부호군으로 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득봉은 자는 계달이고, 호는 매허로 역시 효행이 뛰어났다.
[활동 사항]
이득배(李得培)[1550~1635]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아우들과 편모를 모시고 살았다. 홀로 된 모친을 위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는 삼형제가 모친을 번갈아 업고 피난을 하였고 격문을 돌려 창의(倡義)하여 나라를 구할 것을 호소하였다. 정구(鄭逑), 정인홍(鄭仁弘) 등과 문우로서 교류하였으나 뒤에 정인홍이 그릇됨을 알고 사리를 따져 절교하였다. 어진 이와는 도의로 사귀었으나, 패덕한 사람과는 비록 권세가라도 “태어나기는 한 세상에 하였지만 가는 길은 각기 다르다.”라면서 엄하게 배척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득배는 효행과 학행으로 교수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효성이 남다른 삼효자는 90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자신들이 70세 노인인데도 3년을 나물밥에 물만 마시고 상복을 벗은 적이 없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으며, 최현이 조문한 후 “백발의 삼효자는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늙지 않았네[白髮三老學 身老心不老].”라고 문지방에 써 붙이고 갔다. 뒷날 이재관이 「삼효자전(三孝子傳)」을 썼는데, 이유장과 김선 등이 시로 서문과 발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