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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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善仝 |
영어음역 | Yi Sundong |
이칭/별칭 | 언부,강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우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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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하빈(河濱) |
대표 관직 | 남해현령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언부, 호는 강촌. 이우당(二憂堂) 이경(李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문규이다.
[활동 사항]
이선동(李善仝)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구 김천시 구성면 기로리]에서 태어났다. 조용한 성품에 의지가 곧았으며 불의에 과감하였다. 세종 대 진사가 되어 성균관 유생으로 학문을 닦을 때 궁중 여인들이 왕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학생들과 함께 힘으로 물리쳤다. 이 일로 바른 선비로 칭송을 받았으며, 세종이 특별히 남해현령에 임명하였다. 선정을 베풀어 현민들은 물론이고, 조정에서도 신임을 얻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며 사직하고 김천의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평생 절의를 굽히지 않았다. 단종 사후에도 3년간 매일 뒷산에 올라가 영월(寧越)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 지조 곧은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이선동이 세상을 떠나자 유림들은 그의 덕을 흠모하여 조직을 결성하고 은거하던 기로리에 유허비를 세워 공덕을 후세에 남겼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대방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현규가 찬한 유허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