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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40
한자 白鳳陽
영어음역 Baek Bongyang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700년연표보기
몰년 1758년연표보기
추모 1776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신동
묘소|단소 충청북도 영동군 황금면 죽전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수원(水原)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수원(水原). 아버지는 김천의 대표적 효자라 불리는 백시형(白時珩)이고, 형으로 백봉주(白鳳周)가 있다. 아들로 백상정(白尙淨)을 두었다. 이 집안은 3대에 걸쳐 효(孝)를 행하였다.

[활동 사항]

백봉양(白鳳陽)[1700~1758]은 지금의 김천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 채소만 먹고 견뎌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어머니가 “몸을 소중히 하는 것도 효도”라면서 고기를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권하였지만, “아버지가 평생 고기를 드시지 못하였는데 어찌 먹겠습니까”라고 대답하고 입에 대지 않았다. 또한 어머니가 병에 걸려 앓다가 돌아가시자, 3년간 상복을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성장해서는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성묘하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가학으로 학문의 바탕을 닦았으며,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문하에서 실학과 경학을 수학하였다. 강현·이식 등과 학문을 강마하였다. 사림의 추앙을 받는 큰 선비로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산림에 묻혀 평생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저서로는 문집 『대학발휘』 1권, 『이기요람』 2권, 『인심도심통론』, 『사물잠』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금면 죽전리 호엄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행장은 최주하가 지었다. 1776년(영조 52)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지고 통정대부의 품계가 증여되었으며, 동지의금부사겸오위도총부부총관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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