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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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演劇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위경혜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전반적인 연극 발달 과정 및 관련 행사와 단체 등의 활동.
[개설]
군산의 연극은 전라북도 여타 지역에 비해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대 초반 전국 최초로 여성 극단 동광단을 창단하여 전국 순회 공연을 하였으며, 군산 지역을 바탕으로 한 극단 노동 극단도 창단하였다.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연극은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소인극(素人劇)[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출연하는 연극] 활동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신극(新劇) 운동을 전개하였다. 군산 지역 연극 활동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침체기를 맞이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 3개의 일반 극단[동인무대, 탁류, 갯터]이 결성되고 한국 연극 협회 군산 지부가 창립되면서 부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후반 지역 연극 활성화]
군산의 일반 극단은 대학 극단 출신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활동이 폭발적으로 전개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즉, 1984년 12월 21일 지역에서 처음으로 극단 동인 무대가 등장하였다. 극단 동인 무대는 군산 대학교·원광 대학교·전북 대학교·전주 대학교 등 도내 대학 연극반 출신 권태호·김경제·문승희·송병천·정광모·문동인을 중심으로 창단된 극단이었다. 극단 동인 무대는 군산 노인 학교 강당에서 창단식을 가졌으며, 창단 기념 작품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작]를 공연하였다. 하지만 1987년 「블랙 코메디」[피터 세퍼 작]를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 강당에서 공연한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였다.
극단 동인 무대 창단 이래 연출을 담당한 사람은 권태호(權泰豪)이며, 그는 침체된 지역 연극에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군산 연극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권태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전북 대학교 극예술 연구회에서 연기와 연출 활동에 참여한 대학극 출신 연극인으로, 대학 졸업 이후에도 전북 대학교 연극부 기린 극회의 연극을 지도하는 열의를 보였다.
권태호는 1976년 「자동차 사고」[뒤렌마트 작]를 시작으로 「시인의 혼」[오학영 작], 「결혼」[이강백 작], 「철부지들」[톰 존스 작], 「태」[오태석 작], 「30일간의 야유회」[이근삼 작] 등 국내외 작품을 독특하면서도 희화적인 연출 기법을 통해 무대에 올렸다. 권태호가 연출한 「여우와 포도」는 1982년 전라북도 대학 연극제에서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직장 문제로 군산으로 이주한 권태호는 대학극 출신 군산 지역 교사들을 중심으로 극단 동인 무대를 결성하면서 1980~1990년대 군산은 물론 전북 연극계 발전에 공헌하였다. 권태호는 1990년 전북 계원 연극상[연출 부문]을 수상하였다.
1985년 9월, 소설가 채만식을 배출한 군산 지역의 문화적 자존심 계승을 목표로 극단 탁류가 창단하였다. 극단 명칭도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가져온 극단 탁류는 「늪지대의 사람들」[쇼잉카 작]을 창단 기념으로 무대에 올린 이후, 「정복되지 않은 여자」[서머셋 모옴 작], 「신은 인간의 땅을 떠나라」[김찬홍 작], 「배비장」, 「욕망의 섬」[유고 베리 작], 「밥」[김지하 작], 「홍당무」[쥘르 르나르 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암스 작], 「한씨 연대기」[황석영 작], 「돈내지 맙시다」[다리오 포 작] 등을 무대에 올렸다.
극단 탁류는 자신들의 공연이 번역극 위주였음을 자각하고 민족 문화의 밑거름 창출을 위하여 채만식의 희곡을 매년 한 편 이상 공연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1993년부터 극단 탁류의 활동은 중단된 상태이다.
극단 갯터 역시 1985년 창단 이래 10년 동안 총 39회의 공연 실적을 올리며 열심히 활동하였다. 극단 갯터는 국제 와이즈맨 클럽 군산 회원들을 중심으로 창단된 단체로서, 창단 초기 극단 명칭은 할렐루야였다. 하지만 1986년 12월 27일부터 1987년 1월 4일까지 제4회 작품 「파벽」을 공연하면서 명칭을 갯터로 변경하였다.
극단 갯터는 창단 이후 매년 2~3회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1987년에 이르러 최고 5회까지 공연하였다. 극단 갯터의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공연 일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신의 아그네스」[존 필미어 작·백운 연출, 1986년 9월 20~28일, 나드리 백화점], 「고도를 기다리며」[베케트 작·신상만 연출, 1987년 2월 14~15일, 나드리 백화점], 「노미오와 주리혜」[백영기 작·백운 연출, 1987년 4월 18~19일,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 대강당], 「13학년생들의 방황」[백영기 작·백운 연출,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 대강당], 「헬로우 러브 하나님」[백영기 작·백운 연출, 1987년 12월 28~29일, 대지 쇼핑 센터], 「님은 어디에」[백영기 작·백승엽 연출, 1987년 12월 31일, 대지 쇼핑 센터], 「못 말리는 아이들」[백영기 작·백운 연출, 1988년 4월 9~17일, YWCA 강당], 그리고 제12회 작품으로 「철수와 만수」[오종우 작·백운 연출]를 1988년 10월 15~16일 공연하였다.
1989년 극단 갯터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스스로 찾아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 청소년들의 고민과 이상, 그리고 꿈을 주제로 다룬 작품 「노미오와 주리혜」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극단 갯터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극 단체로서 발전하는 데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연기자인 백영기(白永基)[일명 백운]의 공헌이 컸다. 백영기는 1980년대에 걸쳐 10여 편의 공연 대본과 15편의 연출을 맡아 활동하면서 지역 연극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80년대 지역 극단 연극 활동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은 극단 동인 무대와 극단 갯터가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 대강당에서 공연을 자주 벌인 점이다. 1980년대 지역 극단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극단 전용 소극장을 확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청구 여상 강당을 공연장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극단 동인 무대는 1991년 8월에 와서야 소극장인 동인 아트홀을 개관하였고, 극단 갯터도 창단한 지 9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 소극장을 개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단 동인 무대가 1980년대 대학극 출신 연극인 중심이며, 극단 갯터가 지역 봉사를 앞세운 국제 와이즈맨 클럽 회원 중심인 사실을 고려했을 때, 청구 여상에서 공연했다는 점은 당대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군산시 금동 2-3번지에 자리했던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는 산업체 부설 학교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는 1977년 청구 목재 부설 여자 중학교로 개교한 이후, 근로 청소년들의 교육 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1982년 3월 청구 여자 상업 고등학교로 전환하여 1992년까지 폐교할 때까지 53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즉, 극단 동인 무대와 극단 갯터는 근로 청소년 교육 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에서 공연하면서 연극을 통한 교육과 계몽이라는 극단의 목표를 보여준 것이다.
[1987년 한국 연극 협회 군산 지부 창립과 활동]
1980년대 중반 군산의 일반 극단 창단과 연극 공연 활성화는 1987년 한국 연극 협회 군산 지부[이하 군산 지부] 창립으로 촉발된 연극 활동의 활발한 전개 때문이었다.
군산 지부는 3개의 일반 극단과 4개의 대학 연극반, 그리고 5개의 고교 연극반 활동을 지원하면서 지역 연극 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군산 지부는 1987년 4월 25일 창립 총회를 갖고 지부장 서병수, 사무장 김영철, 감사 이조환을 선출하고, 예산 및 사업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군산 지부 출범 당시 설정한 활동 목표는 첫째, 연극 예술 정책 건의. 둘째, 지역 연극 예술 발전을 위한 작품 제작 및 공연 지도. 셋째, 국내외 연극 공연 교류와 지역 연극제 및 각종 세미나 개최와 관련 사업 계획 수립이었다.
군산 지부 창립 당시 소속 일반 극단은 1984년 12월 창단한 극단 동인 무대[대표 문동인], 극단 탁류[대표 조호현], 그리고 극단 갯터[대표 백영기]였다. 대학 극단은 군산 수산 대학의 해왕성[1978년 창립], 개정 간호 대학의 뜨락[1979년 창립], 군산 대학의 마당[1980년 창립] 그리고 전북 산업 대학의 짚시[1988년 창립]였다. 또한 군산 연극 지도 교사 협의회의 지도 아래 운영된 학생 극단은 영광 여자 고등학교[문승희, 김준홍], 군산 여자 상업 고등학교[이조환], 군산 여자 고등학교[홍재화], 중앙 여자 고등학교[박경균, 조진숙], 그리고 제일 고등학교[김관식] 연극부였다.
[1990년대 지역 연극 활동]
1987년 「블랙 코메디」 공연 이후 활동을 중단한 극단 동인 무대는 1990년에 들어 활동을 재개하였다. 1990년 극단 동인 무대는 작품 「갑오야」[공인배 작]로 제6회 전북 연극제에 참가하는 한편, 「수염 난 백작부인」[원제 굿 닥터, 닐 사이먼 작]을 무대에 올렸다. 1991년 8월 극단 소극장 동인 아트홀 개관 기념으로 「에쿠우스」[피터 세퍼 작]를 공연하고, 1992년 「유리 동물원」과 「탁류」[채만식 원작, 박환용 각색, 이호중 연출]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휴면기에 들어갔다.
한편, 극단 동인 무대 창단을 주도한 권태호는 1989년 대학극 출신 교사들을 규합하여 군산 연극 지도 교사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22명의 교사들로 구성된 군산 연극 지도 교사 협의회는 1990년 KBS 군산 방송국 공개홀에서 「전하」[신명순 작]를 선보였다. 영광 여자 고등학교 교사 문승희 연출의 「전하」 공연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직원의 참관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군산 연극 지도 교사 협의회는 1990년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제1회 청소년 연극 축전을 개최하였다. 청소년 연극 축전은 군산 여상, 제일 고교, 영광 여고, 군산 여고, 중앙 여고 연극부의 참여로 이뤄졌으며, 2천 명이 청소년 연극 축전을 관람하여 청소년 문화의 영역 확장에 일조하였다.
극단 동인 무대는 군산 연극 지도 교사 협의회 활동과 청소년 연극 활동에서 나아가 1991년 늘푸른 주부 극단을 결성, 운영하여 연극의 대중화와 지역 연극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극단 동인 무대와 극단 갯터는 사실상 휴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단 사람 세상이 새롭게 등장하여 지역 연극 무대를 지켜 나갔다. 1997년 7월 발족한 극단 사람 세상은 최균·추미경·박능규·송재명·편성후·심선영·박지윤 등을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며, ‘지역 관객이 공감하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연극 제작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극단 사람 세상은 지역을 중심에 둔 공연을 위해 번역극보다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고, 대극장보다 소극장을 선호하면서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있는 무대를 구현하고자 힘을 쏟았다. 1997년 10월 창단 공연 작품으로 「늙은 도둑 이야기」[연출 최균]를 선보이며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늙은 도둑 이야기」 공연은 군산 대학교 여성 문화제와 전북 소극장 연극제 초청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내실 있는 무대를 만들어갔다. 그간의 노력으로 창단 이듬해인 1998년 나운동에 극단 전용 소극장을 개관할 수 있었고, 두 번째 작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연출 최균]를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연이어 「북어 대가리」와 「돌아 서서 떠나라」로 군산 인근 서천과 익산 등지를 순회 공연하면서 지역 연극 발전에 일조하였다.
극단 사람 세상은 군산 개항 100주년을 맞이한 1999년 「칠수와 만수」를 무대에 올렸다. 극단의 7번째 정기 공연 작품인 「칠수와 만수」는 군산 대학교의 4·19 문화 행사와 충청남도 서천군의 초청을 받아 공연을 계속해갔다. 이후에도 사람 세상은 「그 여자 이순례」, 「엄마 안녕」, 「가죽 버선」, 「안 내놔 못 내놔」 등을 관객에게 선보이며 지역 연극을 지켜나갔다.
극단 사람 세상의 활동 가운데 주목할 사실은 1999년부터 주최한 채만식 연극제이다. 채만식 연극제는 군산의 소설가 채만식(蔡萬植)의 문학성과 연극성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채만식은 28편의 희곡을 집필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채만식의 작품은 독특한 풍자와 연극적인 성격이 돋보인다. 채만식의 작품 가운데 군산 지역을 상징하는 소설이 『탁류』이다.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 일보』에 연재된 『탁류』는 모함과 사기, 그리고 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어낸 작품이다. 『탁류』는 소설 초반부터 금강과 만경강의 합류점인 군산에 사는 조선인의 미래 없고, 굴절된 욕망이 투사된 미두장(米豆場)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채만식 연극제는 말 그대로 극단 사람 세상이 추구한 ‘지역 관객이 공감하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연극’이라는 창립 정신에 부합한 행사였다.
극단 사람 세상은 1999년 10월 1일부터 군산시 나운동 한국 통신 뒤 소극장에서 ‘제1회 채만식 연극제’를 개최하였다. 10월 17일까지 진행된 채만식 연극제는 극단 사람 세상 이외에, 작은 소동과 달란트 연극 마을 등 전주와 익산 지역 3개 극단이 참가하여 채만식의 「가죽 버선」과 장진의 「서툰 사람들」 등 희곡 4편을 연극 무대에 올렸다.
[1990년대 지역 연극 발전의 난제]
1990년대 군산 지역 연극 활동은 발전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지역 연극 발전을 가로막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다. 군산을 포함한 전북 지역은 공연 예술 연구소와 같은 연극 유관 단체, 도내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관련 사회 기관 및 단체가 부재하였다.
지역 연극 발전은 상설 공연 개최, 관객 확보, 그리고 전문 연극인들의 안정적 생활이 보장되는 환경 마련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극단에 대한 지원과 재정 부족, 그리고 전문 연극인의 부재는 지역 연극 발전을 저해하였다.
극단 갯터의 경우, 전문 연극인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창작품으로 인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또한 군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문 극작가와 연극 평론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은 연극 활동 주체들이 대중과 교감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지역 공연 정보와 극단 간의 교류 부재, 그리고 기업의 문화 예술 지원 협의체 메세나(mecenat)의 활용과 권장 기구 비상설화로 인하여 지역 연극 활동은 침체, 또는 부진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창단 9년 만에 소극장을 확보한 극단 갯터는 운영 재정 부족으로 공연장 폐관 위기에 처했었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지역 연극 활동의 난제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한국 연극 협회 이사장 정진수가 극단 갯터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서울의 연극인들로부터 3백만 원을 모금하게 된다.
극단 살리기 운동은 서울의 연극인뿐만 아니라 군산 시민도 참여하였는데, 군산 소재 원우 건설 주식 회사가 사옥에 소극장을 마련하고 기금을 제공하면서 극단 갯터의 소극장 폐관 위기는 일단락을 짓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극단 갯터 대표 백영기는 서울 연극인과 군산 시민의 모금 6백만 원을 극단 운영 어려움에 처한 전주시의 창작 소극장과 디딤 소극장에 전달해줄 것을 제안하였고, 모금액은 한국 연극 협회 전주 지부에 기탁되었다.
이와 같이, 지역 극단 문제는 연극 단체 상호간의 도움, 또는 일시적 지원을 통해 해결되는 등 연극 발전을 위한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원우 건설 주식회사의 극단 갯터에 대한 지원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업과 문화 단체의 만남은 지역 연극 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었다.
기업과 극단의 만남 이외에, 지역 연구 기관과 극단의 협동을 추구하는 노력 역시 생겨났다. 즉, 1995년 11월 전북 대학교가 예술 문화 연구소를 개설하여 지역 문화와 새로운 공연 예술 발전을 이끌어갈 기틀을 마련하였다. 예술 문화 연구소는 전통 예술의 계승과 발전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는 한편으로, 전문 인력 재교육 및 예술 문화 관련 학술 정보 교류와 보관 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연구소는 기업과 문화의 연계를 시도하여 지역민의 예술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는 사업을 수행하여 지역 예술인 활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2013년 현재 전북 대학교 예술 문화 연구소 분과는 한국 음악 분과·미술 분과·음악 분과·무용 분과 4개이며, 안타깝게도 연극 분과는 찾아볼 수 없다.
[2000년대 군산의 연극-극단 갯터와 극단 사람 세상을 중심으로]
2000년 초반 군산 대표적 극단 갯터[대표 백영기]가 작품 「진포 대첩」 공연을 기획하였다. 전(前) 전주 시립 극단 상임연출가 안상철의 연출로 금강 하굿둑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진포 대첩」은 군산 앞바다에서 왜구를 섬멸한 최무선 장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진포 대첩」은 무대 공연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작품으로서, 극단 갯터는 물론 도내 극단 배우들이 두루 참여한 음악극 형식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예산 지원이 지연되면서 금강 하굿둑 공연은 무산되었으나, 2000년 9월 19일과 20일 군산 시민 문화 회관에서 「아! 진포여」라는 제목의 대형 퓨전 뮤지컬로 관객과 만났다. 「아! 진포여」는 군산시와 극단 갯터가 문화 관광부와 전라북도, 연극 협회, 군산 예총 등의 도움을 받아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다.
극단 사람 세상은 이전부터 주최한 채만식 연극제를 사람 세상 소극장에서 개최하였다. 도내 3개 극단과 경남 창원 소재 극단 미소 등 4개 극단이 참가한 채만식 연극제에서 극단 사람 세상은 채만식 희곡 두 편을, 극단 하늘과 극단 명태, 그리고 달란트 연극 마을은 일반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다.
극단 사람 세상은 연극 공연 이외에, 연극 워크숍, 풍물 교실, 환경 미술제 등을 부대 행사로 실시하여 채만식 연극제를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행사 내용이 ‘채만식’과 별반 상관없으며, 채만식 연극제가 의욕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 기획과 행사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01년 극단 사람 세상은 작품 「탁류」[연출 최균]를 무대에 올렸다. 2001년은 채만식 작고 50주년이었으며, 군산은 채만식 기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채만식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극단 사람 세상의 작품 「탁류」 공연은 채만식의 대표적 장편 소설 『탁류』를 기본 구조로 하여 현대인의 모습을 재조명하였다.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밴 특유의 냉소와 욕설을 실감나게 담아낸 연극 「탁류」는 군산 고등학교 교사 추연석이 각색했다. 제3회 채만식 연극제 축하 공연 작품으로도 무대에 올랐던 「탁류」는 편성후·박해윤·김영진 등이 출연하였다.
2000년대 극단 사람 세상은 공연 작품을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렸는데, 대표작으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연출 최균], 「색시공」[연출 최균], 「피노키오」[연출 추미경],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연출 최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2001년 정기 공연 작품 「어린 왕자」와 「마요네즈」 가운데, 「마요네즈」는 전라북도 연극제에 참가하여 우수 작품상과 연출상[최균] 그리고 최우수 연기상[추미경]을 수상하였다. 2002년 제20회 정기 공연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는 전라북도 연극제 비경선 부문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군산 유일의 소극장 사람 세상은 지역 교육 극단의 아동극 공연을 마지막으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전까지 극단 대표직을 맡은 박능규 역시 사임하였다. 하지만 소극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극단 사람 세상의 무대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극단 사람 세상은 2003년 「굿 나잇 마더」와 「부촌」, 그리고 「돼지와 오토바이」를 무대에 올렸으며 2007년까지 해마다 서너 편의 작품을 공연하였다.
한편, 2000년대 중반에 들어와 극단 사람 세상이 주최한 채만식 연극제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4년 제6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채만식 연극제의 존속이 어렵게 된 것이다. 채만식의 친일 행적이 문제였던 것이다.
채만식의 희곡과 문학 세계를 연극으로 조망하는 유일한 기회였던 채만식 연극제 중단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역 연극인들과 연극 연구자들은 채만식 연극제 중단 요인을 다음 몇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 채만식 연극제는 연극제 출범 의도에 부합한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데, 단지 몇 편의 작품 공연에 그치고 말아 연극제 성격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채만식 연극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적극적이고 성실한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채만식 연극제는 군산 지역 연극인과 예술 유관 기관과의 광범위한 협조가 동반되어야 한다. 채만식 연극제는 채만식 문학관과 같은 문화 기관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채만식의 희곡을 연극화한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 상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채만식 연극제는 개별 극단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연극 협회 군산 지부와 군산 예총, 그리고 군산시와 협조 체제를 이뤄야만 가능하다 등이었다.
극단 사람 세상은 1997년 창단 이래 2007년까지 정기 공연 35회, 6회에 걸친 채만식 연극제, 각종 연극제 참가, 연극 교실 운영 등 지역 연극 발전을 건실하게 지켜왔다. 특히, 단지 6회의 행사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지만, 채만식 연극제 개최는 지역과 지역민을 연극의 장(場)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2010년대 군산의 연극]
2013년 2월 현재 한국 연극 협회 군산 지부는 정회원 70명을 두고 있으며 군산 지부 산하에 동인 무대, 사람 세상, 녀자, 둥당애, 백토 등의 극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극단 사람 세상에서 연극 활동을 펼쳤던 추미경이 교육극 연구소 마중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연극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