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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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武王 |
영어공식명칭 | King Mu |
이칭/별칭 | 부여장(扶餘璋),서동(薯童),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一耆篩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정성미 |
활동 시기/일시 | 600년 - 무왕 백제 제30대 왕으로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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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641년 - 무왕 사망 |
출생지 | 금마저 - 전라북도 익산시 |
묘소|단소 | 익산 쌍릉 - 전라북도 익산시 쌍능길 65[석왕동 6-13] |
성격 | 왕 |
성별 | 남 |
[정의]
삼국 시대 익산 지역에 미륵사와 궁궐 등을 축조한 백제의 왕.
[개설]
무왕(武王)[재위 600~641]은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성장 세력 기반인 익산 지역에 왕궁평성(王宮坪城)과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였다. 또한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불교 정책을 펼쳤다.
[가계]
무왕의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며 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一耆篩德)으로도 불린다. 아버지는 제29대 법왕(法王)[?~600] 또는 제27대 위덕왕(威德王)[525~598]의 아들이라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무왕의 아버지에 대해 기록이 다른 것은 600년에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인은 미륵사 사리장치 발굴을 통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전하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유력 귀족가문인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로 밝혀졌다. 아들은 백제 마지막 왕인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이다.
[활동 사항]
무왕은 600년에 즉위하였다. 중국과의 외교를 통하여 책봉을 받게 됨으로써 왕위 계승에서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였다. 대외적으로는 수나라와 동맹하여 고구려를 견제하려 하였는데, 607년 3월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고구려 공격에 협조하기도 하였다.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가 건국한 뒤에도 고구려에 대한 포위 전략을 지속함으로써 국방 정책에 비중을 두었다.
무왕은 재위 41년 동안 신라와 총 13회의 전쟁을 치르며 영토 회복에도 힘썼다, 특히 624년의 전투를 통하여 낙동강 서쪽 지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여 642년 의자왕 대의 대야성전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활동으로 무왕의 재위 기간 동안 백제의 국력은 회복되었고, 신라에 대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왕권이 강화되었다. 한편, 대내적으로는 익산 지역에 미륵사와 왕흥사 등 왕건 강화와 관련한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궁궐을 중수하고 6좌평제를 확립하여 통치 체제의 안정을 이루었다. 641년 사망하였다.
[묘소]
2018년 익산시 쌍능길 65[석왕동 6-13]에 있는 익산 쌍릉 대왕릉의 인골 분석을 통하여 피장자는 나이가 최소 50대에서 60대의 노년층이며, 연대는 서기 620년에서 659년으로 산출되었다. 따라서 641년 사망한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